[감성노트] 행복

입력 2017-05-26 17:26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

“어느 쪽을 선택해야 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조언을 구하는 친구에게 “네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선택해”라고 한다. 뜻대로 되지 않아 낙담한 가족에게 “무엇을 하든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말로 응원을 대신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할거다. 우리는 행복을 삶의 최고 가치로 친다. 오랫동안 ‘행복이란 뭘까’ 하는 본질적 물음에 천착했다. “나는 행복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인생을 세심하게 관찰해 왔다. 행복의 실체를 캐내려고 책과 논문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행복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 다들 황당하게 여기겠지만 솔직히 그렇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행복을 믿지 않는다. 행복이란 실체가 없는 관념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행복을 추구하세요!”라고 웅변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다른 것을 얻고자 하는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그래서 “행복은 없다”라며 김빠지는 말을 툭툭 내뱉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에 대해 다르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올해는 드디어 승진해서 행복하다는 직장인도 있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척 하니 들어만 가주면 최고로 행복할 것 같다는 엄마도 있다.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산책할 때가 제일 좋다는 아빠, 돈 걱정 없이 하루만 살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가장도 있다. 나의 환자들은 “공황장애가 완치되어야 행복할 수 있어요. 아프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게 행복이죠”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나는 행복해요!”라고 한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해지자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행복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500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는 5000만 가지의 서로 다른 행복이 있다. ‘누가 누구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 세상사람 모두를 끌어 담을 단 하나의 행복은 없다. 내가 행복에 대해 잘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이유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