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까지는 20일 정도 잠 못 자도 끄떡없었어요. 요새도 2, 3일 밤새는 일은 밥 먹듯 해요. 밤이 돼야 감정이 고양되고 손이 나가니까.”(이건용)
“고약한 그림 만나 안 풀리면 잠이 안 와. 밤새 그리다 뭔가 헝클어진 게 풀려야 잠을 잘 수 있거든요.”(손장섭)
작가에게 칠십대는 어떤 나이일까. 여전히 작업하기 좋은 나이다. 이렇게 외치듯 70대 원로 작가들의 신작 개인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1970년대 실험미술의 기수 이건용(75) 작가와 1980년대 민중미술의 주역 손장섭(76)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건용 개인전’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에서 진행 중이다. 황해도 출신으로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온 그는 70년대 단색화가 주류미술로 득세할 때 시대에 저항하듯 신체를 이용한 각종 퍼포먼스와 드로잉을 하는 행위예술을 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줄 정도로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었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신체 드로잉’에서 회화적 요소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그는 화면의 뒤에서, 혹은 화면을 등지고 팔을 뻗어 선을 긋는다. 화면을 보지 않은 채 팔이 그어내는 격렬한 움직임, 그 우연의 효과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린다’는 전통의 담론은 그렇게 전복이 되었다. 실수와 우연이 작품이 된다.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강렬한 몸짓이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회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전시 취지에 맞춰 과거의 합판은 캔버스, 매직펜은 붓으로 바뀌었다. 지하 전시장의 3점은 갤러리에서 작업한 것이다. 이 작가는 “힘이 넘치는 작품이라 단번에 나오는 것으로 다들 알지만, 캔버스에 바탕칠을 해놓고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그렸다. 그러다 느낌이 확 오면서 200호짜리 대형 작품 3개를 하루 만에 다 그렸다”고 말했다. 7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는 ‘손장섭: 역사, 그 물질적 역사의 흔적으로서의 회화’전이 한창이다. 손장섭은 민중미술의 기폭제가 된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이자 민족미술인협회 초대회장이다.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철책 지뢰밭 등 역사의식을 형상화한 사실주의적 작품을 그려왔다. 회고전의 성격을 띤 이번 전시에는 그런 과거 작품들이 집결했다. 2000년대 이후 집중한 나무와 자연풍경을 그린 신작들도 대거 나왔다. 어떤 작품이건 한결같이 ‘손장섭의 색’을 만날 수 있다. 흰색을 섞어 표현되는 청회색 혹은 은회색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채화에 흰색을 섞어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요. 그렇게 청자색을 내고 싶었어요.” 모든 작품에는 흰색이 스며들어 빚어낸 ‘한(恨) 서린 장중함’이 있다.
그가 근년 들어 주목하는 것은 고목이다. 그것도 잎 떨어진 나목이다. ‘용문사 은행나무’ ‘울릉도 향나무’ ‘영월 은행나무’ ‘이천 백송’ 등 풍파를 견디며 500년 넘게 한자리를 한 자리를 지켜온 고목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고목은 단순히 물리적 크기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우리를 빨아들이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존재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나뭇잎이 없는 상태로 그립니다. 신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원적인 힘은 역동적이고 신성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처럼요.” 6월 1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70대, 작품 활동하기 여전히 좋은 나이
입력 2017-05-29 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