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억원대 뇌물 혐의로 재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5일 열린 두 번째 공판에는 홀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첫 재판과 같이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올림머리를 연출했지만 표정은 한층 어두웠다. 변호인단이 법리적 문제 등을 거론할 때도 피곤한 듯 하품을 하거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뇌물 수수 등 혐의 2회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군청색 정장 차림으로 출석했다. ‘나대블츠’(국정농단 공범·대기업 뇌물 등 의미) 문구가 적힌 503번 수용자 배지도 왼쪽 옷깃에 달았다.
이날 재판은 미르·K스포츠재단 비리 재판기록을 박 전 대통령 측이 확인하는 증거조사 절차였다. 이 재판을 5개월 이상 받았던 최순실(61)씨는 참석 의무가 없어 불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재판 시작과 함께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날선 주장을 쏟아냈다. 이상철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사실 입증 계획을 세운 후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며 “입증 계획이 안 세워진 상태에서 증거조사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이의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즉석에서 합의한 뒤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증거와 증인이 방대한 사건 특성상 당장 필요한 재판기록부터 조사하는 건 타당하다”고 했다.
검찰도 공세에 나섰다.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검사는 “박 전 대통령 측이 절차 문제만 45분 이상 지적하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유영하 채명성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 관여하지 않았느냐. 그때 기록을 모두 검토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헌재에 제출됐던 기록은 4만5000여쪽이지만, 추가로 제출된 삼성 뇌물 사건 기록만 4만쪽이다.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피고인석에 놓인 모니터에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진, 기업 관계자 등의 증인신문 녹취록이 나오자 박 전 대통령 표정은 달라졌다. 모니터 앞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증언 내용을 하나하나 살폈다. ‘최순실을 만났을 때 미르재단 진행 사업과 운영 상황을 회의했다’(이한선) ‘처음부터 최순실은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를 함께 운영할 생각이었다’(노승일) 등 최씨 관련 진술이 나올 때는 얼굴이 굳어졌다. 유 변호사와 상의하며 여러 차례 펜으로 뭔가를 메모하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만 법정에서 공개하고 있다”며 “방청석에 취재진이 많은데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도 공개해 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변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으냐. 반박할 기회는 충분히 드리겠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이 끝날 무렵 의견 진술할 기회를 받았지만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재판이 끝날 때도 “(의견은) 나중에…”라고만 했다. 이날 법정에서 그가 내놓은 말은 19자에 불과했다.
글=양민철 황인호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박근혜 前 대통령, 최순실 관련 진술 나오자 굳어지며 메모
입력 2017-05-25 18:16 수정 2017-05-25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