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거면 왜 낳았느냐고 원망했어요.”
고등학생인 강준경(가명·18)군과 이하진(가명·18)군은 16년 전 부모와 헤어져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서울후생원을 찾아왔다. 당시 두 소년은 고작 세 살이었다. 준경이는 두 형과 함께 아동보호소에 맡겨졌다가 후생원으로 오게 됐다. 하진이는 부모가 이혼한 뒤 경기도의 한 영아원에 맡겨졌다가 만 3세가 되어 후생원으로 옮겨 왔다.
두 소년은 이제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만 18세가 돼 후생원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도움 받을 부모는 없다.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후생원에서는 퇴소하는 학생에게 정착지원금도 지급하고, 자립을 위한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후생원의 지원이 유지되는 5년 안에 제 힘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준경이와 하진이의 눈빛에서 불안과 긴장이 느껴졌다.
다행히 준경이에게는 후원자가 있다. 운동을 잘하는 덕분에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엔 운동과 외국어 공부로 바쁘다. 유학을 마치면 후생원에서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준경이는 좀 더 철이 들기 전에는 부모를 원망했다. “버릴 거면서 왜…”라며 혼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을 한 부모를 비난했다.
지금은 원망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후생원을 나가게 되면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부모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아직은 막연하다. 3년 먼저 후생원을 나간 둘째형이 부모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다. 그는 “부모님이 왜 그랬는지 끊임없이 궁금했다”며 “만나서 대답을 들으면 그래도 마음은 후련할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다만 “지금도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려는 부모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단호히 말했다.
준경이는 “나처럼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아이들도 가능하면 시설보다는 가정에 입양돼 정착하면 좋겠다”고 했다. 16년째 후생원에서 생활해 온 그는 “시설에서 지도 선생님들이 잘 대해주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부모님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진이도 요즘 바쁘다. 준경이는 먼저 퇴소해 자립에 성공한 둘째형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하진이는 혼자 준비해야 한다.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없는 점이 때때로 외롭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호텔 결혼식장, 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스로 번 돈으로 용돈을 쓰고 자립을 위해 저축도 조금씩 했다. 자동차정비사가 될 생각으로 지금 기술을 배우고 있다. “자동차 정비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고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진이는 내년까지는 어쨌든 홀로 서야 한다는 점이다.
하진이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 가족관계증명서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됐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본 것도 불과 몇 개월 전이다. 하진이는 “중학생 때는 부모님이 나를 버린 이유가 궁금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아빠를 닮았을지, 엄마를 닮았을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부모의 빈자리를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진이는 공원에서 엄마아빠 손을 양쪽에 붙잡고 가는 아이를 보면 부러웠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에게 사랑 받고 자라는 게 아무래도 가장 좋다”고 말했다. 고3이 되어 진로 상담을 할 때 하진이는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를 쓰는 난에 뭐라고 쓸지 고민하다 ‘X’를 적었다. 왜 그랬느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그는 “부모님이 없다”고 대답했다. 동정 어린 시선이 그를 향했다. 하진이는 그 눈빛이 싫었다.
부모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하진이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얼굴을 직접 보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생각날 것 같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하진이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니 두 분이 주소지가 달랐고 모두 아파트였다”며 “이혼해서 각자 사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부모를 찾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다만 하진이 역시 “지금 베이비박스에 남겨지는 아이들도 새로운 가정에서 사랑 받고 자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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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26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