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대기업 일자리 상황도 기업별로 점검하겠다고 하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시장 상황과 투자 계획 등을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또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를 풀고 투자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대기업들의 비정규직 현황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각 계열사가 처한 시장 상황과 노동 환경에 따라 비정규직 고용 비중은 천차만별이다. 비정규직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계열사들의 비정규직 비중은 0∼4%대다. 4대 그룹 관계자는 “대부분 계열사의 경우 변호사나 외국인 등 일부 고액 연봉을 받는 계약직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규직화가 진행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시적인 업무가 필요한 일부 계열사들의 사정은 다르다. 단체급식 사업이나 영업촉탁직이 필요한 유통사업, 물량의 증감 폭이 큰 사업을 운영하는 계열사들은 비정규직 비율이 20%를 상회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보수적인 경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비정규직 이슈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김영배 상임부회장은 25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266회 경총포럼에서 “민간기업에서도 정규직 전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며 “현재의 논란은 본질적으로 대·중소기업 간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채용하는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직원이기 때문에 대기업 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의 임금격차 문제 등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재계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토대를 정부가 먼저 마련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적으로 청년 신규 인력 채용은 기업의 사업 계획과 투자 규모 등에 의해 결정된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일자리) 총량이 같다면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할수록 청년을 위한 신규 일자리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부가 각종 비합리적 규제들을 풀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일자리 총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등 일부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신규 채용 증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가족경영·상생경영 및 창조적 노사문화 선포 2주년 기념식에서 “고용이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있다”며 “성장에 따른 고용 확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경영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7만명 신규 채용’과 ‘3년간 비정규직 근로자 1만명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1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업체에 물품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30일 이내에 지급토록 하는 물품대금 지급 프로세스를 마련, 다음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총 5000억원 규모의 ‘물대지원펀드’를 조성해 무이자 대출을 지원할 예정이다.정현수 심희정 기자
jukebox@kmib.co.kr
靑 ‘일자리 상황판’ 압박에… 재계 “채용여건 조성부터”
입력 2017-05-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