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된 뒤 로버트 맥나마라 포드 사장을 인터뷰했다. ‘비(非) 포드’ 가문 출신으론 처음으로 포드 사장 자리에 오른 경영의 귀재인 그에게 국방부 장관을 맡기고 싶어서였다. 맥나마라는 케네디와 처음 대면하면서 “퓰리처상을 받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당신이 실제로 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써준 것인가”라고 물었다. 1시간 동안 케네디를 추궁한 뒤 “이제 당신이 질문하라”고 하자 케네디는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나오면서 그는 부관에게 국방부 장관 되기는 틀렸다고 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맥나마라를 선택했다. 맥나마라는 케네디와 린든 존슨 행정부에 걸쳐 8년간 역대 최장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케네디 사단의 스타’로 국방 문제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걸쳐 조언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도 파격과 감동의 연속이다. 스토리 있는 인물을 골라내고, 진영을 안 가리고 인재를 등용한다. 대기업 주식 한 주씩을 갖고 십수년 재벌개혁 운동을 한 학자, 부당한 상부의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국민검사’, 군대 내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온 예비역 중령이 정부 요직에 등용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여성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힘 있는 자리에 앉힌 것도 신선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어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과 수첩인사, 받아쓰기 내각에 신물 난 반작용도 클 거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책임 장관제를 하겠다고 전문가를 뽑았다면 장관들을 소신껏 일하게 하고 모든 권한을 줘라. ○○○위원회 같은 ‘옥상옥’으로 일하는 장관들에게 시어머니 노릇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았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일자리위원회,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등 10여개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김대중정부 당시 364개였던 위원회는 노무현정부 들어 416개로 늘어나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렸다. 대통령의 지지를 업은 위원회가 막강한 위세를 떨쳤고 장관도 위원회에서는 일개 위원에 불과했다.
요즘 대선 공신들이 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리나 특보란 이름으로 ‘완장’ 하나씩 차는 것을 보니 ‘장관 위에 상관’으로 군림할까 노파심이 든다. ‘작은 청와대’를 하겠다면서 장관급 정책실장을 신설하고 일자리수석, 경제수석 등 업무가 중복되는 자리를 양산하는 것은 또 뭔가. 아무리 미국 쪽 마당발이라고 해도 일간지 회장 출신을 특보에 앉힌 것도 보기 안 좋다. 그가 대주주로 있는 언론이 제대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권언유착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대선 때 문 캠프에는 1000명이 넘는 폴리페서와 전직 관료, 정치인들이 몰렸다. 이들이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투하될까도 걱정된다.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이명박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정부에선 이러한 적폐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각료 후보자들의 능력이나 자질, 도덕성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나 흠집내기로 발목을 잡는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다. 부모가 해외에 근무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자녀의 이중국적이나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닌 위장전입에 대해선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박근혜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영입하려던 김종훈 더 벨 사장 같은 인재가 고국을 등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은 2017년이니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여의춘추-이명희] 장관 위에 상관이 어른거린다
입력 2017-05-25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