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송붐’… “나를 뚫을 생각 하지마!”

입력 2017-05-24 21:20 수정 2017-05-25 00:47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의 골키퍼 송범근이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몸을 날려 상대 슈팅을 막아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송범근은 23일 기준 선방 10개(선방률 90.9%)를 기록해 부문 1위를 달리며 대표팀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신태용호’의 수문장 송범근(20·고려대)의 별명은 ‘송붐’이다.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차붐’ 차범근이다. 송범근의 아버지 송태억씨는 열혈 축구 팬이다. 차범근(현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아들의 이름을 아예 ‘범근’으로 지었다고 한다. 송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을 데리고 ‘차범근 축구교실’을 찾았다. 송범근은 차범근처럼 공격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5학년 때 축구부 감독이 골키퍼 포지션을 권유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컸기 때문이었다. 송범근은 “골키퍼는 싫다”고 울었다. 그랬던 그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경기에서 선방 쇼를 펼치며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었다,

송범근은 지난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대회 A조 조별리그 2차전(한국 2대 1 승)에서 온몸을 던져 아르헨티나의 소나기 슈팅을 막아냈다. 아르헨티나는 이날 7개의 유효슈팅을 날렸는데, 이중 6개를 저지했다. 송범근은 20일 기니전에서도 3개의 유효슈팅을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골키퍼가 볼을 잘 막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는 빌드업(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뿐 아니라 역습의 시발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또 압박을 위해 달려오는 상대 공격수들을 따돌릴 수 있어야 하고, 상대의 공세가 거세지면 볼을 드리블하며 템포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194㎝, 88㎏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송범근은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재능을 타고난 데에다 이케르 카시야스(FC 포르투)와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골키퍼의 동영상을 보며 연구한 덕분이다.

송범근의 또 다른 강점은 승부차기에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연세대와의 U리그 왕중왕전 4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펼치며 고려대를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축구 관계자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차분히 승부를 기다리는 침착한 성격과 탁월한 신체조건이 승부차기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토너먼트에서 승부차기에 들어간다면 송범근의 능력이 빛을 발할 전망이다.

송범근은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수원 삼성 U-15 팀인 매탄중을 다니다 기량 미달로 2학년에 올라갈 무렵 팀에서 나왔다. 이후 세일중에서 축구를 했는데, 다시 프로구단 산하 팀에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창단 2년 차에 접어든 상주 상무 U-18 팀 용운고에 진학했다. 여기서 주전으로 뛰며 실력을 키웠다. 마침내 2015년 1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러시아에서 열린 발렌틴 그라나트킨 U-18 친선대회에 출전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송범근은 아르헨티나전이 끝난 뒤 “위기 상황에서도 실점하지 않고 선수들끼리 믿고 뭉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기니전 무실점으로 자신감이 늘었다”고 말했다. 폴 심슨 잉글랜드 감독이 26일 열리는 한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며 ‘한국 골키퍼를 괴롭히겠다’는 말을 한 것에 대해 “괴롭힐 수 있다면 한번 괴롭혀 보라”고 당차게 응수했다.

송범근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럽리그에 진출하는 첫 번째 한국 골키퍼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 분데스리가에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더 이상 내 뒤에 볼은 없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24일 U-20 월드컵 스코어>

C조 잠비아 4-2 이란 / 코스타리카 1-1 포르투갈

D조 남아공 0-2 이탈리아 / 우루과이 2-0 일본

전주=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