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 것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일자리 상황판에는 고용률, 취업자수, 실업률, 청년실업률 등의 지표가 표시된다. 취임 후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한데 이은 조치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일자리 실패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선 일견 맞는 말이다. 수년째 기업들은 이익을 내는데도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실업률이 4.2%로 17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때 수준인 11.2%, 체감실업률은 무려 23.6%에 달한다. 취업난 때문에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고 ‘N포세대’ 등의 자조어가 계속 나도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투자와 채용을 꺼린다고 기업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사무화·자동화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고임금·강성노조를 피해 생산성이 높은 해외로 나가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 분야는 규제로 꽁꽁 막혀 있다. 이러고서 시장이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앞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더 가속화할 것이란 점이다.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정규직 자체가 줄어드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통령이 수치만 챙기다보면 질 나쁜 일자리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정부가 공공기관 청년인턴제, 박근혜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내걸었다가 시간제 일자리만 양산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규제를 풀어주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줘야 한다. 금융·교육·의료·관광·법률 등 서비스산업 육성 계획은 노무현정부 때 수립됐지만 기득권의 반발과 여야 공방 속에 십수년째 공전하고 있다. 새 정부의 최대 국정 목표가 일자리 창출이라면 당장 국회에 묶여 있는 서비스산업발전법부터 통과시켜야 한다. 미국에서는 2007년 이후 교육, 헬스케어, 사회복지, 레저 등 서비스 분야에서 700만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청소·안내 등 단순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하려던 인천공항공사는 거꾸로 가야 할 판이다. 손발을 묶어놓고 무조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하면 기업들은 늘어나는 비용만큼 신규 고용을 줄이거나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설] 일자리 숫자만 챙기지 말고 환경을 만들어라
입력 2017-05-24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