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늘 했던 말이고 취임사에서도 강조한 말이다. 이 슬로건은 새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가 됐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21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직후 “새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 그 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그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롭게 분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분야에 이를 적용해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형마트와 골목상권 등 여러 가지 현안의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 대통령이 ‘재벌개혁 전도사’인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지명한 것도 기회 불균등, 기울어진 운동장, 양극화의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탁을 바라보는 재계는 뒤숭숭하다. ‘이제 올 것이 왔다’는 우려와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엇갈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18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의 존재 목적은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그걸 통해 한국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재벌개혁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20년 동안 시민운동을 하면서도 ‘재벌 해체’를 꺼낸 적이 없다면서 재벌은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다만 불건전한 지배구조와 경제력 집중으로 산업 생태계가 왜곡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 질서를 공정하게 확립해서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되찾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다. 재계가 감내할 수 있는 속도와 절차에 따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김 후보자도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좀 더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혁 방안을 찾고자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업에 가장 큰 부담은 불확실성이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 임원은 새 정부에 대해 바라는 것을 묻자 “기업은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한다. 정부가 기업에 다소 불리한 정책을 택하더라도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우리는 대비하고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앞으로 대기업들이 변화된 환경에 부응할 수 있도록 분명한 시그널을 보낸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그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마켓 플레이어(시장 참여자)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재정에 의존해 정책을 추진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일자리 창출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자리 만들기의 성패는 민간에 달려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마중물 성격이 돼야 하고 결국 민간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투자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장하성 정책실장도 “결국 절대다수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정부재정이 지원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은 누군가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정권 초기 재벌 총수들이 청와대에 초대받아 당선 축하선물 하듯이 그룹 차원의 투자와 채용 규모를 밝히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제는 청와대와 정부, 업계의 실무자들이 자주 만나 소통하고 인식을 공유하면서 민관 협치의 기틀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재중] 평등, 공정 그리고 정의
입력 2017-05-24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