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선택이란 기묘하다. 내 의지로 뭔가를 선택한 것 같지만 나를 둘러싼 어떤 것들이 내 등을 떠밀었던 때도 있고, 그 선택이 무얼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따라가다 몰락하기도 한다. 물론 운이 좋으면 구제될 수도 있다.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 소설 ‘현명한 피’(Wise Blood·IVP)에는 무언가를 선택한 헤이즐 모츠가 등장한다.
모츠가 선택한 것은 교회다. 예수 없는 교회. “난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전합니다. 나는 맹인이 보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걷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죽은 채 있는 교회 성도이자 목사입니다.…타락이 없었기 때문에 구원도 없으며 타락과 구원이 없으니 심판도 없다고 설교할 겁니다. 예수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121쪽)
그가 거리에서 전도하는 장면이다.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다. 모츠의 할아버지는 ‘독침을 숨기고 다니는 말벌같이 머릿속에 예수를 담고’ 다니던 순회 설교자였다. 자신은 할아버지처럼 설교자가 되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4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한 그는 매춘부를 찾아가 기어코 죄를 짓는다. 자기에게 ‘예수가 필요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 진리가 없다는 게 진리라고 소리치지만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설교를 모방해 돈벌이하려는 이만 나타날 뿐이다. 모츠는 생석회를 눈에 발라 자기 눈을 멀게 하고 구두바닥에 깨진 유리조각을 깔아 신는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모츠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243쪽)라고 한다.
‘현명한 피’는 영국 신문 가디언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권의 소설 중 하나로 뽑은 작품이다. 다채로운 독법이 가능하다. 우선 크리스천이라면 종교적 우화(寓話)로 읽을 수 있다. 오코너는 서문에서 “마지못해 그리스도인이 된 인물에 대한 희극소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란 어불성설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엡 1:23)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츠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왜 필요한지를 열렬히 설득한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방어할 뭔가를 찾아보게 된다. ‘교회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 문득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미 모츠가 세우려한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닮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오코너의 눈에 비친 기독교의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죄의 나락과 구원의 길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인간. 현명한 피는 그 운명을 담은 서사이기도 하다.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모츠를 보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이 떠오른다. 전쟁 속에 모츠가 믿는 것들은 조롱당하기 일쑤였고 결국 그는 믿음을 잃었다. 급기야 예수 없는 교회 전도자가 되고 만다.
문학사조로는 남부 고딕(Gothic)과 그로테스크(Grotesque, 기이한) 문학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부 고딕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공포 신비 환상을 담은 문학작품을 가리킨다. 부적응자 에머리, 음탕한 소녀, 재산을 노리는 집주인…. 모츠를 중심으로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 건조하고 무겁고 날카로운 이야기다.
오코너는 생전에 이 소설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므로, 가능하면 그렇게 읽혀야 한다”고 했다.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인간 안에 깃든 기이한 욕망과 죄의식을 탐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독자는 눈을 감게 될 것이다. 모츠가 간 길 끝에 희미하게 머문 그 빛을 보기위해.
곁들여 읽을 책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소설집 플래너리 오코너(현대문학). ‘좋은 사람은 드물다’ 등 31편이 담겼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는 여행하던 가족이 범죄자에게 희생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할머니는 두목에게 “너도 내 애기들 중 하나”라고 하지만 그는 할머니의 가슴을 향해 총 세 방을 쏜다. 오코너는 이렇게 폭력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미국 남부의 어떤 ‘비밀’을 드러낸다. 오코너는 25세 때 전신에 염증이 생기는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10여년 동안 투병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20세기에 태어난 작가로는 처음으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미 고전문학 전문 비영리 출판사)에서 전집이 출간됐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작가와 작가가 되려는 사람,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어야할 작가”라고 평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그는 왜 예수 없는 교회 전도자 되었나
입력 2017-05-25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