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피투성이 시신… 살상 극대화 위해 ‘못폭탄’ 쓴 듯

입력 2017-05-24 05:01
영국 북서부 맨체스터에서 22일(현지시간) 폭발 사건이 발생한 뒤 청소년들이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 주변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고 직후 공연장 안에 있던 관객들이 놀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 AP뉴시스, 가디언 캡처

22일(현지시간)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24)의 ‘댄저러스 우먼 유럽 투어’ 8회차 공연이 열린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그란데는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신나는 노래로 3시간을 꽉 채운 뒤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3분 후인 오후 10시33분, 들뜬 분위기의 공연장은 한순간에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뀌었다. 건물 바깥쪽 매표소 인근에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집으로 향하던 관객들은 혼비백산했다.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참혹한 폭탄 테러였다.

목격자 엠마는 BBC방송에 “공연장 로비 유리가 산산조각 났고 곳곳에 피투성이가 된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며 “어떻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울먹였다. 또 다른 목격자 데이비드 리처드슨은 “공연이 끝난 뒤 관객석 오른쪽 뒤편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사람들이 당황한 사이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렸다”고 묘사했다. 놀란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현장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아비규환이 됐다. 바닥엔 옷가지와 휴대전화 등이 남겨졌고 그란데를 향해 흔들던 핑크색 풍선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폭발 지점 인근에서 너트와 볼트가 흩어져 있었고 못에 상처를 입었다는 부상자 진술에 따라 이번 사건에 ‘못폭탄(nail bomb)’이 사용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테러에 자주 사용돼 온 사제 못폭탄은 못과 나사 등 파편을 잔뜩 채워 넣고 압력을 받으면 사방으로 튀게 설계됐다. 폭발 시 인명 피해를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러 직후 공연장 인근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를 추가로 발견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버려진 옷가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앰버 루드 내무장관은 “고의적으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목표로 삼은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끌었던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이번 사건은 아이들을 직접 겨냥한 공격”이라며 “우리는 유럽 다른 지역보다 테러에 안전한 장소라고 자신했지만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약간의 평안도 느끼지 못하겠다”고 우려했다.

SNS에는 행방불명인 친구와 가족을 찾는 글이 잇따라 올라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모 없이 공연장을 찾았던 청소년 중 사상자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맨체스터에서 실종되다(missing in Manchester)’는 해시태그를 달고 실종자의 사진과 인상착의 등을 공개했다. 인근 호텔과 지역 주민들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무료로 방을 내줬고 택시 운전사들은 교통이 통제돼 이동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차량 서비스를 제공했다.

최대 2만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맨체스터 아레나는 스포츠 경기와 각종 공연이 열리던 곳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실내 경기장으로 그간 영국 록그룹 롤링스톤스, 미국 팝스타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 등 초대형 스타들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장은 하루 평균 1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빅토리아역과도 연결돼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다. 그란데는 지난 8일 스웨덴 스톡홀름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 14개국 18개 도시에서 공연을 열고 있다. 오는 25∼26일 런던 O2 아레나에서도 공연이 예정돼 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