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36분 구치소 → 9시10분 법원 ‘박근혜, 53일 만의 외출’

입력 2017-05-24 05:00
뇌물죄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구속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이 수척한 모습으로 구치소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417호 대법정으로 가고 있는 모습. 김지훈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9시10분쯤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후 53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박 전 대통령은 수감 생활의 영향인 듯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눈도 조금 부어있었다.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듯 그의 손목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수의 대신 군청색 계통의 정장을 입었지만 왼쪽 옷깃에 ‘503’이라고 적힌 수인번호 배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 역시 이전과 달리 흐트러져 있었다. 구치소 수감 당시 올림머리를 풀고 머리카락을 내려뜨린 모습이었던 것과 달리 이날은 구치소에서 구매한 플라스틱 핀 등을 이용해 약식으로 올림머리를 했다.

모아 올린 머리를 집게핀으로 잡고 검은색 큰 똑딱 핀 3개를 꽂아 고정시켰다. 구치소에선 금속 재질로 된 실핀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큰 핀을 꽂은 것으로 보인다.

교정공무원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집게핀은 개당 1660원, 똑딱 핀은 개당 390원이다. 회당 수십만원 수준의 전담 미용사의 손길 대신 2830원만 들인 ‘응급처치’식 셀프 올림머리였다. 잔머리가 삐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날 재판에 처음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8시36분쯤 서울구치소를 나섰다. 수감 첫날 먹었던 것과 같은 메뉴인 식빵과 치즈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였다. 구속 수감될 당시 검찰이 제공해준 K7 차량을 이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 호송엔 법무부의 파란색 중형 미니버스가 동원됐다. 탑승한 수감자는 박 전 대통령 혼자였다.

박 전 대통령 이동에 청와대나 경찰의 별도 경호 지원은 없었다. 안전 확보 차원에서 경찰이 앞뒤로 사이드카 1대씩을 배치한 게 전부였다. 원활한 이동을 위한 교통통제도 없었다. 호송 차량은 선암IC, 우면터널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앞을 통과해 법원에 도착했다. 35분 정도 걸렸다. 출근시간과 맞물리면서 터널을 통과하는 데 약간 시간이 지체됐다.

같은 시각 법원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모인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그득했다. 친박단체인 ‘국민저항본부’ 회원 등 200여명은 집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니 당장 석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부대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다! 당장 석방하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박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호송 차량이 모습을 보이자 집회가 더욱 거칠어졌다. 한 중년 여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경찰병력과 취재진을 향해 “돈 한 푼 받지 않은 대통령을 죽인 살인자들”이라며 오열했다. 일부는 박 전 대통령을 가까이 보기 위해 호송 차량에 접근했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다시 호송 차량을 타고 구치소로 돌아갈 때까지 시위를 계속했다. 박 전 대통령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을 마치고 오후 1시15분쯤 청사를 빠져나갔다.

한편, 경찰은 이날 법원 일대에 6개 중대를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법원으로 들어가는 길목도 통제했다. 출입증이나 방청권 없인 법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 동생 근령씨도 법원을 찾았으나 방청권이 없어 발걸음을 돌렸다. 글=황인호 임주언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