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퇴임 후 돌아오면 ‘야, 기분좋다!’ 반겨달라”

입력 2017-05-23 18:19 수정 2017-05-23 21:40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장남 건호씨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묵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상임대표, 박맹우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정숙 여사, 문 대통령, 권양숙 여사, 건호씨, 이해찬 의원,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김해=이병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대선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노무현재단은 추도식 제목을 문재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슬로건을 조합한 ‘나라다운 나라, 사람 사는 세상’으로 정하며 9년 만의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여권 주요 인사들이 총집결해 민주세력의 부활을 선언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이후 닷새 만에 다시 당청 일체기조를 재확인하며 집권 초반 국정동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였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가 참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세상, 문 대통령이 완성할 세상이 오늘의 주제”라며 “아주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8년 전 노 전 대통령께서 뿌린 씨앗이 수천만의 담쟁이 촛불로 살아나 결코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벽을 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앞길을 밝히는 횃불이 됐다”고 추도했다. 정 의장은 ‘바보 노무현’을 외치다 울먹이기도 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깨어 있는 시민의 단합된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며 “문재인정부의 출범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국민 모두의 진통과 산고의 결과이자 노무현정신의 승리”라고 했다. 이어 “당신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기필코 이루겠다”며 “문 대통령과 함께 개혁과 통합의 과제를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종환 의원은 추모시 ‘운명’을 낭송하며 “당신이 이겼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이 이겼다”고 외쳤고, 문 대통령과 권 여사는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추도사를 낭독할 때 행사는 절정에 달아올랐다. 참자들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추도식 참석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자 탄성을 내기도 했지만, “성공한 대통령으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한 번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 달라”고 하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참석자 전원은 행사 마지막에 함께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했다.

이날 행사는 이전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노무현재단 측은 일반인 행사 참여인원을 역대 최대 규모인 1만5000여명으로 추산했다. 봉하마을로 진입하는 2차로 도로는 오전부터 인파와 차로 붐볐고, 추모 행사장을 향하는 길목에는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과 현수막이 가득했다. 행사장 입구에선 인파가 몰려 500m가량 줄이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들도 70여명이 참석했다. 당 지도부는 전날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최대한 많이 참석해 달라고 독려했다.

행사는 엄숙하게 진행됐지만 대선 승리의 여유도 묻어났다. 임 전 의장은 유족을 향해 “이제 슬픔을 거두시고 활짝 웃으시라. 노 전 대통령도 ‘이제 고마 쎄리 웃어라’고 말씀하신다”며 우스갯소리도 던졌다. 삭발한 상태로 단상에 오른 장남 건호씨는 “정치적 의사표시도 아니고 사회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심하게 탈모 현상이 일어났는데 방법이 없어 본의 아니게 속살을 보여드리게 됐다. 탈모인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고 농담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건호씨는 “아버님이 역사의 도구로서 하늘이 정해준 길을 걸어간 건지, 아니면 시대를 가로질러 결국은 역사의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트신 건지 저는 알지 못하겠다”며 “살아계셨다면 막걸리 한잔 하자고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도식 참석을 위해 대구에서 3자매가 함께 왔다는 구모(68·여)씨는 “추모식을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며 “노 전 대통령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문 대통령이 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강원도 원통에서 함께 군생활을 했다는 노현석(69)씨는 “대통령을 너무 빨리 떠나보내 애석하다”며 “문 대통령이 지금처럼만 끝까지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묘역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광주에서 왔다는 김모씨는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이라고 적었고, 김해에서 온 이미숙씨는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주신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글=전웅빈 기자, 김해=이영재 김판 기자 imung@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