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과 동네 슈퍼는 더는 버틸 힘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해 깊숙이 찌르고 있는 ‘대기업의 칼’을 제발 뽑아 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동네 슈퍼 상인들이 대기업 계열 유통사에 복합 아울렛, 기업형 슈퍼마켓(SSM), 각종 편의점 등의 출점 중단을 촉구했다. 정부에는 동네 슈퍼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등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서 ‘대기업 골목상권 침탈 규탄대회’를 열고 “대기업 계열 유통사들은 출점을 중지하고 당장 골목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탄대회에 참여한 전국 52곳 협동조합 소속 조합원은 ‘동네슈퍼 말살하는 노브랜드 물러가라’ ‘골목상권 싹쓸이꾼 대기업 유통 물러가라’ ‘생계형 적합업종 동네슈퍼 살린다’ 등이 적힌 피켓을 흔들기도 했다.
강갑봉 연합회장은 “신세계 이마트, 현대, 롯데 등 대기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을 휴지처럼 팽개치고 대통령의 공약을 비웃듯 골목상권 침탈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규탄대회를 시작으로 동네슈퍼와 골목상권을 고사시키는 모든 대기업에 대한 응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회가 발표한 ‘대형마트 골목상권 출점 현황 보고’에 따르면 대기업의 편의점 점포 수는 CU 9604개, GS25 9529개, 세븐일레븐 8556개, 위드미 1765개 등이다. 대형마트도 2010년 347곳에서 2015년 515곳으로 늘었다. 반면 동네슈퍼마켓의 경우 1993년 기준 약 15만개에서 지난해 4만5000개 수준으로 줄었다.
노양기 전남동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편의점이 늘어나는 동안 골목상권은 절반으로 줄었다”며 “요즘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것은 ‘목불인견(目不忍見·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박재철 경기광명시수퍼마켓이사장도 “원래 480개였던 슈퍼 점포가 지난해 말 조사해보니 280개로 줄었다”고 말했다. 인구 35만명의 광명시에는 이마트 광명 소하점과 코스트코 광명점 등 17개의 대규모 점포가 입주해 있다.
연합회는 정부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출점 점포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할 것과 주변 상권에 대한 사전영향평가제 도입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골목상권 활성화를 공약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도 대규모 점포에 포함시켜 규제하고 도시계획 단계부터 입지를 제한해 진출을 억제하기로 했다.
글=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
“골목상권 침해하는 ‘유통 공룡’ 출점 막아 달라”
입력 2017-05-24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