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가계빚 17조↑… 증가속도 줄었다지만 과속 여전

입력 2017-05-24 05:03
폭증세는 멈췄다. 하지만 여전히 과속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지난 3월 말 현재 1360조원으로 1분기에만 17조원 이상 늘었다. 시속 200㎞ 이상 폭주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증가폭 측면에서 나아졌지만 아직도 170㎞대로 질주하는 셈이다. 속도위반이라는 점은 변함없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세밀하고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은행은 23일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이 1359조6538억원에 이르렀고, 1∼3월에 17조1270억원 늘었다고 발표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짊어진 빚을 보여주는 통계다. 금융회사들로부터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까지 합친 금액이다.

가계는 소득 정체와 함께 부채 급증에 따른 원리금 상환압력 증가를 겪고 있다.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경기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이 때문에 문재인정부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50%로 유지하겠다고 공약했다.

1분기만 놓고 보면 올해 1분기의 가계부채 증가폭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지난해 1분기 증가폭(20조5548억원)이 사상 최대치다. 통상 1분기는 이사 수요가 적고 상여금 등으로 빚을 갚는 기회가 많아 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박근혜정부에서 가계부채 폭증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4년 1분기엔 고작 3조4057억원 늘었었다. ‘빚을 내서 집을 사라’ 정책과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본격화된 2015년 1분기에도 13조458억원 늘어 올해 1분기 증가폭보다 오히려 낮았다. 아직은 가계부채 증가세의 둔화를 말하기엔 개운치 않은 것이다.

여기에다 ‘풍선효과’는 거세지고 있다. 금융 당국의 옥죄기가 성공하면서 예금은행의 대출 총량은 1분기에 1조1000억원 정도 느는 데 그쳤다. 반면 제2금융권과 기타 금융기관은 각각 7조4000억원, 8조4000억원 증가했다.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서민들이 고금리 대출 상품, 정책금융 상품으로 대거 몰린 탓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자체 집계한 ‘속보치’를 꺼내들며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를 강조한다. 금융 당국은 1분기 가계대출 증가액이 15조3000억원이라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공식 통계기관인 한은이 내놓은 1분기 가계신용 증가액(17조1270억원)보다 1조8000억원 낮은 수치다. 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에서 차이가 났고, 제2금융권 가운데 신용협동조합과 상호금융의 자금 일부가 빠졌다. 자체 통계로 낮은 수치를 내놓고 증가세 둔화를 강조한 꼴이 됐다.

금융위는 지난달부터 이달 12일까지 은행의 가계부채가 6조7000억원 늘었다고 다시 공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7조3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줄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 관계자는 “정책 집행기관이 정책 평가까지 나서서 한다면 오지랖 넓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통계 불일치 수정이 먼저”라고 꼬집었다. 글=우성규 나성원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