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국민의 발’ KTX… 음주 소란에 ‘불안’

입력 2017-05-24 05:01

지방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김모(50·여)씨는 서울로 출장 올 일이 잦다. 그는 두 달여 전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탔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회식을 했는지 술에 취한 정장 차림의 남성이 열차에 타더니 이동카트에서 파는 맥주를 마시며 일행과 떠들었다. 김씨는 “시끄러워서 퇴근길이 두 배로 피곤해졌다. 왜 KTX에서 술을 파는지 모르겠다”며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술을 안 마시는데 열차에서는 마셔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방 출장이 잦은 직장인 박모(33)씨도 지난달 저녁 시간에 KTX를 타고 가다 기차에서 맥주를 마시는 남성을 봤다. 그는 벌겋게 상기된 남성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불편했다. 박씨는 “대중교통에서 술을 팔거나 마시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며 “혹시 소란이라도 피울까 봐 걱정이 됐다”고 토로했다.

KTX는 한 해 6만명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발’이 됐다. 특히 정부의 세종시 이전과 공기업의 지방 이전으로 최근 몇 년간 지방 출장, 통근용으로 이용하는 승객이 늘었다. 편안한 출퇴근길을 원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열차 내 주류 판매를 제한·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승객이 술을 과하게 마시고 소란을 피워도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 KTX·SRT(수서발 고속열차)에서는 열차 내에서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사건이 한 해 50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열차 내 음주소란(경범죄)으로 통고처분을 받거나 즉심에 처한 경우는 2015년 73건, 지난해 58건, 올해는 4월까지 17건 발생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교통수단 종사자의 음주에 대해선 처벌을 명확히 하고 있으나 술을 마신 승객 입장에 대한 규제는 없다”며 “철도안전법상에도 주취소란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고,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술에 관대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달리는 열차에서 취객이 벌이는 소란은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정성봉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는 “승객이 음주난동을 부릴 경우 철도운행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거나 심할 경우 안전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박찬우 의원은 지난 2월 취객에게 철도 내 주류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의 철도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 제50조에는 ‘음주로 인해 소란을 피우거나 그러한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차량 내에서 술 판매·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아울러 음주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도 신설했다.

윤경철 송원대학교 철도운수경영학과 교수는 “열차에서 개인에게 판매하는 양을 한정하거나 철도 경찰을 더욱 강화해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며 “취할 정도로까지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