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자글 주름 잡힌 손이 리어카 손잡이를 움켜쥔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지만, 가로등을 등대 삼아 동네 일주를 시작한다. 여전히 고된 하루의 시작이지만 리어카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발걸음에 활기는 더해진다. 서울 성동구에서 8년째 폐지 수거를 하고 있는 김봉덕(69) 할머니가 새벽을 여는 모습이다.
그런데 김 할머니의 리어카는 뭔가 색다르다. 칙칙하고 어두운 기존 폐지 수거 리어카 대신 노란색 배경에 화사한 광고판이 들어가 있다. 광고판에는 ‘중고차 매매로 성동구 자양동 폐지 수거 노인을 지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세상에 없던 광고판 하나가 사람들을 향해 뭔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느낌이다.
폐지 줍는 노인은 전국적으로 170만명. 보통 성인 몸무게인 60∼90㎏의 손수레를 끌고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온 동네를 구석구석 누빈다. 이렇게 하루 12시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4000원 남짓이다. 안전사고에 취약한 길 위의 삶, 부정적인 사회인식…. 이런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학생들이 ‘리어카에 광고판을 달고 돌아다니면 수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로 사회적기업 ‘끌림’을 설립했다. ‘광고하는 리어카’를 제작하는 끌림은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을 경제적으로 향상시키고, 그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자 만들어졌다. 리어카 옆면에 광고판을 달아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며, 이를 통해 얻어지는 광고 수입 일부를 해당 노인에게 전달하는 형식이다. 리어카는 단순히 광고를 위한 작업공간뿐 아니라 폐지 수거 노인들의 이미지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역할도 한다.
끌림은 기존의 지저분한 리어카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색상과 소재의 조화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좀 더 보기 좋고 편안한 리어카를 만들었다. 경량 소재를 사용해 기존 리어카 무게의 반(35∼40㎏)으로 줄였고 야간 반사판 부착 등으로 안전 문제까지 해결했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폐지 수거 노인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 할머니는 “우리 같은 노인을 생각해주는 학생들이 너무나 기특하다”며 “리어카도 무료로 만들어주고 돈까지 입금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환하게 웃는다.
끌림의 김광준 대표는 “리어카 광고 사업은 단순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폐지 수거 노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70만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이 나아질 때까지 끌림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사진·글=서영희 기자 finalcut02@kmib.co.kr
[앵글속 세상] 어르신 삶의 무게도 덜어드리길… 가벼워지고 화사해진 ‘폐지 리어카’
입력 2017-05-24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