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전 대통령 재판, 정치적 악용 말고 차분히 지켜봐야

입력 2017-05-23 17:32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서울구치소로 갈 때 입은 파란 정장 차림에 핀으로 머리를 올려 고정했다. 수의는 입지 않았고 수인번호를 배지로 대체했지만 손목의 수갑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지지 여부와 탄핵 찬반 입장을 모두 떠나 불과 2개월여 전까지 청와대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봐야 한다는 현실에 착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뒤 우리나라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조기 대선이 치러져 새 정부가 출범했다.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국론 분열과 세대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치유되는 중이다. 심각했던 안보·경제 위기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여전히 과제는 많지만 위태롭기만 했던 각 분야가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검찰 대면조사, 영장실질심사, 구치소 압송을 거치며 충격을 줬던 박 전 대통령 사건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판사에게 직업과 주소를 말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도 이제 법 앞에 평등한 평범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변호인은 주요 증거의 조작 가능성을 계속 주장했고,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조서에 등장하는 관련자 진술의 대부분을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법정에서 검찰과의 공방이 얼마나 치열할지를 가늠케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올림머리를 하고 법정에 나선 것은 재판에 임하는 각오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최종심까지 1년 이상 진행될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을 누구도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검찰과 유·무죄를 다투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 등이 법정에서 검찰의 ‘돈봉투 만찬 사건’과 촛불시위를 언급하며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자칫 공정한 재판을 의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고 재판진행을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