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젊은 64세

입력 2017-05-23 17:34

아빠는 1954년생으로 올해 64세다. 얼마 전에 은퇴를 하셨고, 오래 미뤄두었던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인공고관절 전치환술. 고관절은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는 교각 같은 부위인데, 64년간 한 사람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했던 고관절도 은퇴 직전인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고 했다. 아빠는 다리 수술을 하러 갔다가 머리 쪽 주의점도 발견하게 된 경우여서 꽤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수술은 잘되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아빠가 수술 후 깨어났을 때 누구부터 찾았느냐고 물었다. 엄마의 이름을 불렀는지, 아니면 춘향이를 찾았는지. 엄마를 가장 먼저 찾지 않았으면 엄마가 섭섭했을 거라면서 말이다. 정답은 보기에 없는 것으로, ‘우리 딸’이었다. 회복실에서 나왔을 때, 아빠는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내가 시선이 잘 닿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엄마는 아빠의 시선보다도 먼저 아빠 쪽에 가까이 있었다. 늘 그랬다. 지금까지 아빠는 각기 다른 이유로 네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마음을 졸인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아빠는 이제 쿠폰 다 쓴 거야. 엄마 긴장시키는 쿠폰. 더 아프면 안 돼”라고 내가 아빠에게 말했다. 동생도 세 번이나 쿠폰을 썼고, 나만 한 번도 쓰지 않아서 쿠폰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아빠가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굳이 안 써도 돼. 안 쓸수록 좋은 거야.”

의사들이 아빠에게 “아직 젊으시니까”란 말을 하긴 했지만, 그 말을 실감하게 된 건 아빠와 같은 병실을 쓰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98세의 할아버지가 같은 수술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분의 가족들이 병실에 올 때마다 아빠를 보며 이런 얘기를 한다. “젊으니까 회복이 빠르시구나.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빠르시네.” “젊어서 얼마나 좋아요.” 그 2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 머리가 하얀 98세의 할아버지가 계시고, 다른 한쪽에 머리가 까만 우리 아빠가 앉아 있다. 64세에 아빠는 은퇴를 했는데, 그 은퇴가 단지 1막의 끝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구도랄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