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고색창연한 옛날 영화를 봤다. ‘애천(愛泉)’, 원제는 ‘분수의 동전 세 개(진 네귤레스코, 1954)’다. 전후 로마에서 일하고 있는 세 미국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지만 이탈리아의 수려한 풍광을 담은 ‘관광영화’이기도 하다. 하긴 제목 자체도 ‘관광성(觀光性) 속설’이 그 유래다. 로마시내에 있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넣고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애천’을 보면서 ‘티베르 강변의 할리우드’라는 말이 생각났다. 티베르강은 ‘로마의 한강’이다. 할리우드는 2차대전 후 제작비가 싸게 먹히는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고 거기에 들어맞은 게 로마였다. 게다가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치네치타라는 대형 스튜디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치네치타는 무솔리니가 1937년 이탈리아 영화의 중흥을 위해 로마에 건설한 대규모 영화 스튜디오다. 그래서 생긴 말이 ‘티베르 강변의 할리우드’다.
티베르 강변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자. 블록버스터급 사극만 봐도 이렇다. 쿼바디스(머빈 르로이, 1951) 전쟁과 평화(킹 비더, 1956) 벤허(윌리엄 와일러, 1959) 클레오파트라(조셉 L 맨키위츠, 1963) 로마 제국의 멸망(앤소니 맨, 1964) 고뇌와 환희(캐롤 리드, 1965).
물론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적지 않다. 첫 번째가 당연히 오드리 헵번의 출세작 ‘로마의 휴일(윌리엄 와일러, 1953)’이고 두 번째가 이듬해 개봉된 ‘애천’이다. 뿐인가, 멜로의 걸작 ‘맨발의 백작부인(조셉 L 맨키위츠, 1954)’도 있다. 이처럼 ‘티베르 강변의 할리우드’는 1950∼60년대가 전성기였지만 치네치타 스튜디오는 그 후로도 끊이지 않고 할리우드가 애용하는 촬영지가 돼 왔다. 앤소니 밍겔라의 ‘잉글리시 페이션트(1992)’와 마틴 스코세지의 ‘갱 오브 뉴욕(2002)’, 그리고 멜 깁슨 연출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가 그 예다. 무솔리니가 그래도 좋은 일 한 가지는 했구나 싶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23> 티베르 강변의 할리우드
입력 2017-05-23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