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규제’를 두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정부가 은근슬쩍 뭉개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근혜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와 함께 은산분리 규제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정체됐던 은행권에 ‘경쟁’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2일로 영업 50일째를 맞은 케이뱅크는 가입자 30만명을 넘어섰다. 다음 달에 출범하는 카카오뱅크는 지난 19일 은행연합회에 가입하면서 신발끈을 맸다. 인터넷전문은행 측은 금융당국이 당초 추진했던 대로 KT, 카카오 등 일반기업(산업자본)의 지분율 확대 등 자본금 확충이 이뤄져야 활발한 서비스 경쟁과 투자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자세는 어정쩡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내놓은 대선 최종공약집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진입장벽 완화’를 내세우며 “현행법상 자격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공약집의 다른 부분에선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규제 강화 등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원칙을 준수한다”고 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현안을 놓고 보면 상반되는 입장을 한데 넣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겸하는 데 따른 독점과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핀테크 등) 새로운 산업 분야에 대해선 (금산분리를) 유연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는 혼란스러워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에서 아직 (인터넷전문은행 관련한) 금융정책 기조를 세우지 못한 걸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 금융위원장이 어떤 기조를 내세울지부터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금산분리 원칙’이 뒤집어질까 우려한다.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예외가 생기면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진입이 가속화돼 금융질서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대선 기간에 문 대통령 측에 문의했지만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며 “정부가 별도 입장 없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 결정을 국회에 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된 특례법안 3개, 은행법 개정안 2개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현재 4%인 산업자본의 의결권 기준 지분율 한도를 34∼50%까지 높이자는 것이 골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관계자는 “대선 뒤에 당 차원에서 논의가 없었다”면서 “다음 달에 국회가 열린 뒤에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국회의 인적구성과 새 정부 출범 등 여건이 달라져 특례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인터넷은행 진입장벽 ‘은산분리’ 완화냐 유지냐
입력 2017-05-22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