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분노사회와 한국교회의 역할

입력 2017-05-23 00:04

최근 어느 신문사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했다. 내가 경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광주신학교 신학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목격하고 느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나 간증했고 ‘꽃씨 심는 남자’라는 에세이집에도 썼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몇몇 댓글을 보니 ‘시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소 목사가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진작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 등 부정적 어투와 빈정거림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왜곡하고 공격할 수도 있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현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분노사회’라는 말이다. 정치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학계, 문화예술계 등도 ‘분노하라’고 외친다. 지난겨울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얼마나 많은 분노와 분노가 충돌했는가. 다행히 새로운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안정과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은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사회의 불의와 부정, 모순,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 분노를 위한 분노가 되면 사회적 공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선택적 지각과 확증편향성이 그 원인이다.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흡수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해도 삐딱하게 보고 왜곡된 시각으로만 판단하며 공격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편협한 패러다임에 갇혀 호미질만 하는 ‘호미적 사고’만 한다. 그러나 이젠 하늘을 나는 드론과 같은 ‘드론적 사고’를 하며 폭넓게,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 인터넷 상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익명으로 상대를 조롱하고 끌어내리며 갖은 모욕으로 인격살인을 한다. 심지어 이를 즐기며 낙으로 여긴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다른 사람들을 서슴없이 비난하고 조소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안에 있는 상처와 콤플렉스 때문이다. 어떤 부족함 혹은 과도하게 억압된 트라우마가 자기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와 공격의 표출이 정의의 이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정의의 태양’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태양과 광채만 원하며 정의만 부르짖는다면 그 정의의 폭양 아래 다 타서 말라 죽어버릴 것이다. 이런 때에 한국교회는 먼저 분노사회의 화염 속에 그늘이 돼줘야 한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그늘이 돼주신 것처럼 끝까지 품고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들과 여러 방법으로 소통하려 노력하고 인내하며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정치적 성향이나 노선에 편승하거나 줄을 서선 안 된다. 한국교회의 코드나 공익에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해서 정치적 파트너가 돼서도 안 된다. 한국교회는 모든 진영과 소통하고 아우르며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분노의 시대와 사회를 치료하고 양극의 진영을 통합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시대적 책임이요 사명이다.

진리를 지키는 영적 전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본질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모든 진영과 소통하고 그들을 아우름으로써 분노사회를 화해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검투사와 정원사는 똑같이 손에 칼을 들고 있지만 검투사는 사람을 죽이고 정원사는 꽃밭을 가꾼다. 한국교회 역시 진리를 지키고 영적 전투를 할 때는 검투사의 심장을 가져야 하지만 분노를 화해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원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분노로 찢긴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한국교회의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