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을 다시 읽는다… 10주기 맞아 재조명 열기

입력 2017-05-23 19:07
10년 전 세상을 떠난 권정생은 포근하고 따뜻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아동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그의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문학세계를 돌아보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제공
아버지는 거리의 청소부였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했다. 형과 누나는 공장에 나가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탰다. 하지만 소년의 집안은 언제나 가난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주워온 이솝이나 그림형제,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이 소년은 동화 ‘몽실언니’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한국 아동문학의 선구자 고(故) 권정생(1937∼2007)이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 서점가에는 권정생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동문학평론가 엄혜숙씨가 펴낸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소명출판)은 권정생의 삶을 초기(1969∼1980) 중기(1981∼1990) 후기(1991∼2007)로 나눠 고인의 사상을 심도 있게 파헤친 역작이다. 권정생은 지병인 결핵 신부전증 등으로 신음하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의 소외된 것들을 보듬으려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서 거의 대부분 버려진 사물이나 가난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것은 누구보다도 적빈의 삶을 살았던 자신의 실제 체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난은 평생 그에게 삶의 벗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가난은 그에게 불편하고 남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스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게끔 한 조건이자 문학적 자양분이었다.’

권정생은 46년 일본에서 귀국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67년 경북 안동에 정착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건 69년부터. 그의 작품 활동은 동화 동시 소설 산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특히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유명했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엄씨는 권정생의 문학 세계가 ‘기독교 실존주의’→‘기독교 아나키즘’→‘생태 아나키즘’으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권정생의 신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잇달아 재출간되고 있다. ‘하느님의 눈물’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이상 산하) 등이 대표적이다.

‘하느님의 눈물’은 서울 변두리 달동네에 살게 된 하나님의 삶을 담은 장편동화이고,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는 단편동화 17편을 한 권에 묶은 작품집이다. 권정생은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첫머리에 “하느님은 지금도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곁에서 가난하고 가장 힘들게 사실 것”이라고 적었다. 권정생 문학 특유의 천진한 상상력과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권정생의 동화가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사례도 있다. 한 병아리의 이야기를 담은 ‘빼떼기’(창비)다. 이 작품은 검정색 병아리 빼떼기가 한 가정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작품집 ‘바닷가 아이들’에 실었던 동화를 바탕으로 작가 김환영씨가 그림을 그렸다.

‘복사꽃 외딴집’(단비)은 권정생이 과거 잡지에 발표했지만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은 동화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책에는 권정생이 70∼90년대 발표한 동화 4편이 실려 있다. 출판사는 “오래 전에 발표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감동이 여전한 동화들”이라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동화를 썼던 권정생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