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동훈] 巡査와 민중의 지팡이

입력 2017-05-22 17:25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로 경찰이 표정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는 반사이익을 얻게 생겼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에 대비해 수사정책위원회의 구성원을 늘리는 등 향후 수사권 이양범위를 놓고 검찰과 벌일 일대 전투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분위기다. 그럼 정말 경찰에 수사권만 내주면 ‘만사 OK’인 것일까? 이런 의문이 좀체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서민들과 가까이 있는 경찰들 얘기부터 꺼내보자.

사례 1. 버스 추돌로 승용차 뒷부분이 박살나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에 간 일이 있는데 경찰은 가해자인 버스 운전사는 놔두고 피해자가 잘못한 양 윽박질렀다.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기자임이 드러나자 그 경찰은 버스 기사를 ‘조지는’ 쪽으로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사례 2. 정부부처의 사무관 친구가 교통사고 피해가 났는데 가해자로 몰렸다며 서울 모 경찰서로 와 달라고 급한 연락이 왔다. 교통사고 조사반에 들어서는 순간 경찰이 기자를 알아보더니 사례 1의 경우처럼 상대편 가해자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이다.

본 칼럼의 지면 사정상 필자가 경험한 사례를 두 개만 들었지만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실생활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일반인들의 억울함은 오죽할지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지금은 그나마 상당히 희석됐지만 경찰이 일제강점기 민중에 지팡이가 아닌 몽둥이를 휘두르던 순사(巡査)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의 행태가 이러할진대 수사권을 넘겨받은 뒤에도 경찰의 구시대적 행태와 의식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범죄에 대한 초동수사조차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찰의 정치권 눈치 보기는 어떤가. 이승만 대통령이 파수꾼으로 삼은 이후부터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폭압적인 군부독재하에서 대한민국 경찰은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민주화 이후 검찰의 영향력이 비대해져 상대적으로 경찰은 그 위상이 위축되기는 했다. 그러나 MB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과 용산 참사 등에서 보여준 경찰의 정권 눈치 보기 행태는 여전히 정치검찰 못잖은 정치경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비해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는 수사정책위원회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당시 중립성을 잃었다는 논란 끝에 탄생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용산 참사 당시 시위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영전’하는 등 경찰청장, 서울청장 등 경찰 수뇌부는 정치권과 정부에 줄을 대는 자리로 희화화됐다.

검·경은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다. 정권에 기생해온 두 집단의 과거사를 볼 때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하며 고소해할 일도 아니다. 검찰 개혁 기본방향은 경찰 개혁 기본 방향과 같아야 한다. 검찰에 요구되고 있는 민주적 통제와 분권화·전문화, 법 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 등은 경찰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맞다. ‘돈봉투 만찬’ 파문을 계기로 수세에 몰린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게 생짜로 떼어주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다. 두 공권력 집단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억울하게 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수사권이 담보돼야 한다. 경찰은 민중에 휘두르던 몽둥이를 지팡이로 바꾸는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정부는 정치 중립을 요구하기 이전에 급할 때 두 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욕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동훈 사회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