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44만명 빚 족쇄 풀어 陽地로” vs “모럴해저드 우려”

입력 2017-05-22 05:03

장기연체 소액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높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경제활동을 포기한 장기채무자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정책 방향에 대체로 공감한다. 다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를 감안할 때 정부가 앞장서서 일률적으로 빚을 탕감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액채무 탕감은 문 대통령이 가계부채 해법 중 하나로 내세운 공약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년 이상 연체, 1000만원 이하 채권을 소각하는 게 핵심이다. 총 채무 1조9000억원이 탕감되고, 43만7000명의 신용이 회복될 것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돈을 빌리고 안 갚는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다만 금융 당국과 학계 등은 모럴해저드를 조장할 정도로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일단 범위도 처음보다 축소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민행복기금의 11조6000억원(103만명) 규모 회수불능 채권을 소각하고, 대부업체의 11조원(100만명) 규모 장기연체 채권도 펀드 등을 통해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최종공약집 내용만 보면 탕감 규모가 11분의 1 정도로 줄었다.

정책 방향도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해 온 채무재조정 정책과 큰 틀에서 일치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행복기금의 보유채권 가운데 15년 이상 연체채권의 원금을 최대 90%까지 탕감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3년 3월 설립된 행복기금은 금융회사가 소유한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재조정을 도와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설립 후 지난 3월 말까지 58만1000여명이 3조5291억원을 감면받았다. 단순 감면 정도로는 장기연체 빈곤층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행복기금의 채무 감면을 받은 뒤 다시 3개월 이상 연체하는 비율은 전체 감면자 58만1000명 중 10만6000명에 달했다. 이 중 6만명은 월소득 100만원 이하였다. 이 때문에 감면보다 채권 소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기금의 채권은 이미 금융회사도 포기하고 손실 처리한 채권이다. 이미 사놓은 채권을 없애는 것이라 추가 자금이 들지 않는다. 장기연체 부실채권은 액면가의 1% 수준에 팔리기 때문에 채권을 추가로 사서 없앤다고 가정해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 건국대 오정근 특임교수는 “도덕적 해이 우려가 있긴 하지만 10년 이상 연체자는 이미 일상생활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채무를 탕감해주면 경제 활력 및 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일정 기준을 세우고 획일적으로 빚을 소각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무 탕감은 주빌리은행(부실채권 매입 은행) 등 민간기구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중앙대 경영학부 박창균 교수는 “정부가 기준을 정하면 ‘2000만원은 왜 안 되냐’ ‘5년 연체자도 탕감해 달라’ 등 요구가 잇따를 것”이라며 “민간에 자금을 보조하는 식으로 하면 되지 정책적인 탕감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