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인생 역전·고졸 신화 주인공, 독실한 크리스천, 기획예산통 정통 관료. 문재인정부 1기 경제팀을 이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일컫는 말들이다.
김 후보자는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을 전전하다 그마저도 헐리면서 철거민 신세가 됐을 정도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가정 형편에 대학 진학은 사치였다.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덕수상고를 다니던 17살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다. 이후 야간대학인 국제대 법학과에 진학해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은행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관련 잡지를 보면서 꿈이 생겼다고 한다. 고시에 도전해 1982년 입법고시(6회)에 이어 같은 해 행정고시(26회)에까지 합격한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공직생활을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시작했다. 앞서 임명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EPB 출신이다. 이 때문에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모피아(옛 재무부)’에서 EPB로 넘어갔다는 해석도 나온다.
‘자수성가’의 대명사답게 일처리 방식은 치밀하다. 추진력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꼼꼼하고 일을 손에 놓지 않기 때문에 (기재부 공무원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예산 분야에서 경력을 쌓던 김 후보자는 참여정부 때 기획예산처에서 중장기 국정 플랜인 ‘국가비전 2030’ 보고서 작성 실무를 총괄했다. 업무능력은 이후 정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금융비서관 등을 거쳐 2011년 기재부 예산실장, 2012년 기재부 2차관으로 승승장구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규제개혁 과제를 총괄했었다.
20013년 국무조정실장을 맡고 있을 때 28세이던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고도 장례식 당일에 업무에 복귀해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한 일은 김 후보자의 철두철미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변에 아들의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고조차 내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7월 가족을 돌보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공직을 떠났다.
김 후보자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선물’을 거절한 몇 안 되는 정·관계 인사로도 유명하다. 성 전 회장의 ‘선물 리스트’에 김 후보자 이름도 올라 있었지만 비고란에는 ‘사양’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김 후보자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역경을 이겨낸 경험을 전파하는 데 적극적이기도 하다. 주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많이 섰다. 강연 중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강조하며 “어려움은 ‘위장된 축복’일 경우가 많다”고 말한 것은 그의 대표적 어록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주대 총장 시절에 졸업식에서 가수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직접 불러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졸업생이 주인공 되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고, 사회로 나갈 학생들에 대한 격려와 석별의 정을 담는 따듯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치열한 삶과 업무 경험은 새 정부 경제정책에도 녹아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그를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김 총장은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조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음성(60) △덕수상고, 국제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학,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과장·전략기획관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국정과제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재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 △아주대 총장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무허가 판자촌 소년가장’ 김동연, 경제 사령탑 되다
입력 2017-05-22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