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늘졌던 엄마 얼굴, 봄이 피었습니다

입력 2017-05-22 00:01 수정 2017-05-24 09:46
‘장애인 자녀 부모를 위한 화려한 봄날 네 번째 이야기’에 참가한 어머니들이 18일 홍콩 빅토리아 피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랑한다고 카톡(카카오톡)을 보냈는데 확인도 안 하네. 우리 딸은 엄마 없으니까 살 만 한가 봐.”

지난 19일 홍콩의 한 호텔에서 관광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버스 뒷좌석에서 들려온 이야기다. 홍콩과 마카오 여행을 앞둔 설렘 대신 걱정 반 서운함 반이 담긴 소리였다. 이들은 발달 및 지적장애 20∼30대 자녀를 둔 40∼70대 어머니들이다.

수원중앙침례교회(고명진 목사)와 산하 사회복지법인 수원중앙복지재단은 장애 자녀를 돌보느라 여행 한번 가기도 쉽지 않은 이들 어머니 34명을 초청해 18∼20일 홍콩과 마카오로 ‘힐링여행’을 떠났다. 이 중 28명은 타 교회 성도이거나 비신자였다.

교회와 재단은 2013년부터 ‘화려한 봄날’이란 이름으로 이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행 기간 어머니 없이 생활해야 하는 장애 자녀들을 위해 돌봄 프로그램 ‘아띠스토리’도 운영한다.

이들은 18일 홍콩 영화의 거리와 연인의 거리를 방문하고 빅토리아항의 고층 건물 사이로 펼쳐지는 레이저쇼를 감상했다. 19일에는 마카오로 이동해 성바울성당과 세나도 광장을 둘러봤다. 이날 저녁에는 CGN월드 홍콩지부를 빌려 특별위로행사도 가졌다. 레크리에이션 등을 통해 자녀들에 대한 걱정을 잠시라도 잊게 하려는 취지였다.

어머니들은 “엄마 사랑해요, 여행 잘 다녀와요”라는 자녀들의 인사 동영상을 보며 “우리 아들이다, 우리 딸이다”라고 환호하다 눈물을 훔쳤다. 옷 속에 풍선을 넣고 하는 게임을 하면서는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동행한 수원중앙침례교회 복지사역국 소속 이동길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다 알고 계신다”고 위로했다. 이어 “이제 웃으면서 다시 시작할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날 아침 어머니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면서 소감도 나눴다. 일정 중에 자녀와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서로 물었다. 김은혜씨는 “스마트폰을 일부러 ‘비행기 모드’로 해놓아서 연락이 안 되게 했다”면서 “어차피 제가 아이보다 먼저 천국에 갈 테니 아이도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32세 장애를 가진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처음 장애를 발견하고 2년간 매일 눈물이 턱에서 뚝뚝 떨어졌다”며 “그런데 아이를 통해 배운 게 많고 하나님께서 어릴 때부터 좋은 친구, 선생님, 복지사를 붙여주셨다”고 간증했다.

이정화씨는 “우리 집은 서로 전화를 안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요즘은 아빠가 많이 도와준다”며 “25세인 작은 아들이 장애를 갖고 있는데 큰 아들이 걱정 말고 다녀오라더라”고 했다.

감사도 이어졌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는 이미경씨는 “교회가 새 잠옷까지 준비해 줬다”면서 “세심한 섬김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이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서로 공감하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20일 밤 늦게 귀국해 수원중앙침례교회에 도착한 이들은 자녀들의 2박3일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며 또 눈물을 훔쳤다.

고명진 목사는 이들에게 지난 4월 교회 지원으로 촬영한 웨딩 사진을 선물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지하자(빌 4:6)”고 위로했다.

홍콩·마카오=글·사진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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