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올랐다. 그는 중동·유럽 순방의 첫 기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0조원대 무기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반(反)테러 연대를 강조했다.
20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공군기의 축하 비행이 펼쳐지는 가운데 ‘국왕급’ 환대를 받았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레드카펫이 마련된 활주로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맞이했다.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아바야(전신을 가리는 이슬람식 장옷)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 히잡은 쓰지 않았다.
이날 살만 국왕은 최고 영예인 압둘아지즈 국왕 훈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훈장을 받았을 때 “구걸하고 간청하고 허리를 굽혔다”고 비난했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다리만 굽힌 어색한 자세로 훈장을 목에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라바 궁전에서 열린 전통 환영식에서 사우디 무용수들과 함께 ‘칼춤’도 췄다.
사우디 정부는 극진한 예우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타결 이후 악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사우디 정부는 블랙호크 헬기 150대 등 1100억 달러(약 124조원) 규모의 방위계약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란의 영향력과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며 “걸프 지역의 장기적인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 등은 제너럴일렉트릭, 엑손모빌, 블랙스톤 등 미 기업·펀드와 수십조원대 합작투자를 발표했다. 아델 알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양국이 일련의 계약에 서명했다”며 “총 투자가치가 3800억 달러(427조원)가 넘는다”고 밝혔다.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탄핵 사정권에 들어선 가운데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한 날이었다.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됐다”며 “미국에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경제 성과를 내세워 반전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무슬림 지도자 대상 연설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에 맞선 반테러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테러리즘이 전 세계로 확산됐지만, 평화를 향한 여정은 여기 ‘신성한 땅(중동)’에서 시작된다”면서 “미국은 기꺼이 여러분 편에 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이슬람권 국가를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바티칸을 방문한다.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26∼27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트럼프, 사우디서 ‘국왕급’환대… 427조원 투자 계약
입력 2017-05-22 00:03 수정 2017-05-22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