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절단 사고로 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여성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9년 2월 김모(사망 당시 32세·여)씨는 A업체에서 필름 커팅 작업을 하다 손가락 6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2010년 9월까지 3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완치되지 못하고 장애등급 판정을 받았다.
절망에 빠진 그는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기도 했다. 3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 적힌 ‘명랑 쾌활’한 김씨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국 그는 2014년 3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다.
딸을 잃은 슬픔도 잠시 김씨의 아버지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김씨의 아버지가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신청했지만 공단이 “김씨의 자살은 업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 2심은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사고 이후 뚜렷한 지적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 사건 사고로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고와 정신질환 사이 개연성이 높지 않다는 감정의 의견 등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원심은 사고 이후 망인이 받은 스트레스 정도, 정신병이 발병한 경위 등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 인과관계를 부정했다”며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26세의 미혼 여성으로서 이러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와 사망 사이 인관과계를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망인이 자살을 선택할 다른 특별할 사유가 없는 사정 등을 보면 망인이 정신질환으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부닥쳐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30대女, 손가락 절단 사고후 조울증, 극단 선택… 대법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17-05-21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