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박부품 제조업체는 단가 협상을 할 때면 힘이 빠진다고 호소한다. 대기업 구매담당자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해도 그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기업과의 거래를 유지해야 그나마 경기 불황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는 매년 3%의 단가 인하를 조건으로 대기업과 계약했다. 단가를 낮추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대기업에서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거래를 보장하겠다며 계속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대기업과 거래를 계속 이어가야만 회사를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기업의 부당 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단가 후려치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업체는 43개사로 전체의 14.3%였다. 이 중 34.9%는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했다고 답했다. 지속적인 거래관계 보장을 전제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3.3%였다.
업종별로는 조선업계가 부당한 상황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결정한 적이 있다고 답한 조선업체는 전체의 19.3%였다. 전기?전자 업종은 15.9%, 자동차 업종은 13.3%로 그 뒤를 이었다. 매출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부당한 상황에 더 많이 처했다. 매출 규모가 1억∼5억원인 업체는 전체의 33.3%가 납품 단가를 정할 때 부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이 단가를 낮게 산정하는 이유로는 과도한 가격경쟁(58.1%), 경기불황(14.0%), 업계관행(11.6%) 등이 꼽혔다. 협력업체들은 부당한 단가결정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조공정 개선을 통해 낮은 단가결정에 대응하는 업체는 9.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가격경쟁에 따른 대기업 부담이 협력업체로 전가돼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가 후려치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협력업체들은 대기업과의 자율적인 상생협약 유도(45.3%), 판로 다변화(19.0%), 모범 하도급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19.0%) 등을 바란다고 답했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불공정거래 행위가 적발된 뒤에도 이를 개선하지 않은 4개 기업을 공표했다. ㈜에프알제이, ㈜미니멈, 한국특수재료, 케이시시정공 등 기업들은 각각 500만∼4800만원의 지연 이자나 어음 할인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중기청은 상생협력법에 따라 공표 대상 기업에 벌점 2.5점을 부과하고 교육명령을 내렸다. 누적 벌점이 5점을 초과한 한국특수재료에 대해서는 조달청에 6개월간 국가계약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요청할 계획이다.
글=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대기업 횡포, 납품 단가 매년 3% 인하 강요하기도
입력 2017-05-21 18:31 수정 2017-05-21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