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신 헌법 수록’ 논의 과정… 1987년 민주화때 시작, 김영삼정부 후 법적평가 끝나

입력 2017-05-22 05:03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려는 논의는 1987년 민주화와 함께 시작됐다. 노태우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는 6·29선언을 발표한 뒤 여야 핵심 인사들로 구성된 8인 정치회담에서 9차 헌법 개정안을 협의했는데, 이때 5·18민주화운동이 헌법 전문 개정안에 처음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前身)인 통일민주당은 당시 개헌 시안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중략) 4·19의거와 5·18광주의거로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하여서는 단호히 거부하는 국민의 권리를 극명히 하였고…”라고 썼다.

하지만 민정당 측은 “역사적 평가나 가치가 확립되지 않은 일부의 주장을 전 국민적 합의가 담긴 전문에 넣는 것은 곤란하다”며 반대했다. 결국 통일민주당은 ‘군의 정치독립’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5·18광주의거’ 부분을 뺐다.

이후 정치권에선 ‘5·18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논의가 사라졌다. 다만 5·18 관련단체나 지자체가 나서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5·18기념재단은 2007년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에 반영해 달라고 하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2011년 강운태 당시 광주시장은 5·18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5·18민주화운동 정신이 헌법 전문에 명시되도록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하기 전까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주목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는 공약을 냈을 때도 일부 보수층만 반발했을 뿐 큰 파장은 일지 않았다.

민정당 측이 9차 개헌에서 “역사적 평가가 확립되지 않았다”며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을 수 없다고 반발했던 때와 달리 5·18민주화운동은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뒤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역사적·법적 평가를 받아 왔다.

국회에선 1995년 12월 여야 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97년 4월에는 5·18일이 국가기념일이 됐고,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첫 5·18기념식이 열렸다. 글=오주환 윤성민 기자,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