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열흘이 넘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한국은 생동감이 넘친다. 구치소를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잿빛 얼굴이 잊혀진 지 오래다. 문 대통령이 취임 다음날부터 단행한 인사는 신선했다.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를 조사하고 로드맵을 작성하라고 지시하자 사장은 1만명 협력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다짐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초원·이지혜 기간제 교사를 순직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을 보면서는 가슴이 뭉클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적폐의 청산이 하나둘씩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박근혜 전 정부가 쌓아 놓은 커다란 적폐 중 하나는 바로 사드(THAAD)다. 사드 배치의 찬반은 논외로 하고 불투명한 배치 절차와 소통 부재 속에 중국은 사드 보복을 단행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다. 문 대통령의 전체 득표율은 41.1%였지만 재외국민에게는 59.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아마 사드 보복 해결을 간절히 원했던 중국 쪽 투표자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지난주 한국에서 특사들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뒤이어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중국을 찾았다. 중국 측 요구는 일관됐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말을 빌리면 “한국 측에 중국의 중대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잘 해결하길 요구했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나 양제츠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 등 특사단이 만난 인사들은 “사드 배치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특사단의 일원인 서주석 전 청와대 안보수석의 말을 빌리면 중국의 입장은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국이 사드 문제로 사달을 일으켰으니 한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보복 조치를 철회하는 것은 나중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의 특사와 중국 특사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미국에 간 특사는 “사드 배치를 위해서는 국내 여론 수렴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고, 일본 특사는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와 다른 새 정부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혔다. 하지만 중국 특사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 특사단은 “양국 간 소통을 강화하여 상호 이해를 제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중국에 수그렸고, “중국 내 우리 국민과 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도록 중국 측이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을 뿐이다. 말로는 자유무역주의를 외치면서 사드 보복을 하는 중국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언감생심 비판하지 못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중국의 우호적인 제스처에 사드 보복이 해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이 전 총리가 언급했듯 사드 보복 문제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꾸준히 만나 중국의 이해를 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풀릴 것이다. 7월이나 8월 한·중 정상회담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대등한 한·중 관계를 기대하기는 힘들지 모른다. 시 주석이 한국 대통령을 대신한 특사를 접견하면서 자신은 상석에 앉고 특사는 아랫사람 대하듯 보고자(報告者) 자리에 앉힌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한번 기울어진 한·중 관계는 쉽게 청산하지 못할 적폐로 남을 수 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사드가 남긴 것
입력 2017-05-21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