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式 실용인사, 고인 물 씻어내는 계기 되길

입력 2017-05-21 18:39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외교안보 분야 인사에서는 주류가 아니었기에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인재를 발탁하는 실용적 인사스타일이 돋보였다. 믿을 수 있는 측근을 요직에 기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능력이 인정된 적임자라면 누구와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열린 생각이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파격 인사를 가능케 한 것이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문 대통령이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차관까지 역임한 분”이라고 소개할 만큼 대표적인 ‘흙수저’다. 집이 가난해 상고를 선택했고, 은행에 취직한 뒤 야간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명문고·명문대 선후배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문화가 만연했던 공무원 조직 안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요직을 거치며 정통 경제관료로서 경험을 쌓았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 될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는 외무고시를 보지 않은 외교관이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화통화 통역을 계기로 외교부에 특채됐지만 미국인보다 영어를 잘하는 외교관이라고 불리며 외교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초·최고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을 정도다. 장하성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멘토’였다. 상대 후보 진영에서 일했다는 식의 정치색을 빼고 인재를 발굴하니 자연스럽게 통합의 길이 열렸다. 7급 공채로 출발해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에게만 맡긴다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임명된 이정도 비서관에 이은 신선한 파격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료사회는 기수, 학연, 출신지역에 승진과 보직이 영향을 받는 구태를 끊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끄는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민간분야 역시 능력 대신 배경을 먼저 고려하는 잘못된 문화가 자리 잡은 뒤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갖 인연을 동원해 윗사람에게 줄을 댄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젊은이들은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인터넷 용어)을 외치며 좌절감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한두 차례 고위직 인사로 수십년 쌓인 구태가 한꺼번에 해결될 리 없다. 역대 정부에서는 집권 초 참신한 이미지로만 포장했을 뿐 잘못된 인사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거나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을 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박수를 쳤던 국민은 더 큰 배신감을 느끼고 배경을 우선하는 구태는 더욱 강하게 굳어질 것이 분명하다. 새 정부는 이번 인사를 기득권에 안주한 관료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각 분야에서 ‘백’이 아니라 능력이 인정받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