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强骨) 검사 윤석열(57·사법연수원 23기)이 돌아왔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돼 한직을 맴돌았던 그가 19일 검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귀환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검찰 내부에선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 중인 윤 지검장은 이날 특검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갑자기 너무 벅찬 직책을 맡게 됐다”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 지검장은 지금은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등 요직을 지낸 검찰 최고 특수통으로 꼽히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사건 수사팀장이던 윤 지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 수사를 주장해 법무부와 마찰을 빚었다. 그는 직속상관이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윗선의 반대에도 용의 선상에 오른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기도 했다. 윤 지검장은 결국 보고·결재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수사 일선에서 배제됐다.
그는 며칠 뒤 열린 국회 법사위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법무·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며 “상관의 위법한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고 폭로하며 이른바 ‘항명 파동’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일로 윤 지검장은 정직 1개월의 징계와 함께 지방으로 좌천됐다. 당시 그가 남긴 “조직을 사랑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후 윤 지검장은 일선 수사에서 한발 물러나 경기도 여주지청장, 대구와 대전고검 검사로 떠돌아야 했다. 윤 지검장과 함께 징계를 받거나 좌천성 인사를 당한 팀원들은 하나둘 옷을 벗고 나갔다. 이번 문재인정부에 중용된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박 비서관은 국정원 사건 수사 부팀장으로 윤 지검장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 보고를 위해 조 전 지검장 집에 찾아갈 때 그의 옆을 지켰던 인물이다.
한직으로 나돌던 윤 지검장이 반전을 맞이한 건 국정농단 수사였다. 박 특검은 중수부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윤 지검장을 특검팀으로 불러들였다. 박 특검은 그를 일컬어 “수사를 잘하는 합리적인 검사”라고 평한 바 있다.
윤 지검장은 수사팀장으로서 삼성그룹의 뇌물공여 혐의 수사를 지휘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 법정에 직접 나가 구속 당위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특검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일부 파견검사와 남아 공소유지를 해왔다.
서울 출신으로 충암고를 졸업한 윤 지검장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5명의 검사장이 같은 과 동기다. 대학 재학 시절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모의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으며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일화는 유명하다. 윤 지검장은 이후 강원도에서 도피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붙었지만 2차까지 통과하는 데는 9년이 걸렸다. 노무현정권 초기인 2003년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태평양에 1년여 몸담기도 했지만 검찰 선배들의 권유로 검찰에 복귀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사건, 부산저축은행 수사 등 굵직한 수사를 담당했다.
글=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윤석열 중앙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로 좌천됐다 화려하게 귀환
입력 2017-05-20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