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의 북악산 자락. 녹음이 한창인 이곳의 공터와 폐가가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변했다. 한 때 닭도리탕으로 유명했던 ‘성 너머집’의 빈터, 옛 카페 ‘성북도원’과 조경 사업으로 번창했던 ‘해동조경’의 폐건물이 경사진 도로를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된 것이다.
장영원 작가는 잡풀 무성했던 ‘성 너머집’ 빈터에 가짜 대리석으로 ‘오리엔탈 골드 풀’을 만들었다. 풀 안에는 벽돌, 대들보 등 이곳에서 나온 폐자재를 금칠 해서 장식품처럼 넣었다. 그는 “한국에서 부의 척도였던 실내 수영장을 통해 ‘욕망의 조경화’를 비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아래 옛 ‘해동조경’ 건물 옥상에는 홍장오 작가가 농촌에서 쓰는 ‘반짝이 허수아비’ 기성제품을 가지고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성북동 일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를 개막일인 지난 17일 찾았다. 올해로 3회째인 ‘서울예술동’ 미술축제다. 성북문화재단 산하 성북예술창작터, 협동조합 아트플러그, 주민 모임인 ‘성북삼선 예술마을 동네모임’이 공동 기획했다.
내달 10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 주제는 ‘살랑이는 예술군도’다. 복합문화공간 성북예술창작터의 장유정 큐레이터는 “성북동에는 여러 예술기관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다.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주민들과 더욱 소통하는 현대미술 축제로 거듭나고자 했다”고 말했다.
30여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참여 규모가 놀랍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성격도 다채롭다. 성북예술창작터 같은 통상의 전시공간 뿐 아니라 치안센터, 공방 등이 가세했고, 버려진 공터까지 전시 무대가 됐다.
성북예술창작터 외관에는 분홍색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어 주민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회색 외벽은 최성임 작가의 캔버스가 됐다. 최 작가는 금색으로 뾰족뾰족한 피뢰침을 무수히 그려 넣었다. 이곳이 지역의 예술 동력을 수렴하는 거점이 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내부에는 그동안 전시했던 작가들 중 최승훈 이지송 등 8명의 최근작이 전시되고 있다. 1층은 성북동을 보여주도록 꾸몄다. 사진작가 최승훈은 성북동 일대를 카메라에 담아 접이식 화첩처럼 펼쳐서 보게 했다. 2층은 주제가 다소 자유롭다. 연극인 박정자의 남편으로 1세대 광고감독 출신인 이지송 작가는 아이폰으로 찍은 풍경 영상 작품을 내놨다.
이웃한 성북1치안센터에도 작품이 걸렸다. 치안센터 앞마당, 게시판 옆에는 똑같이 모양의 쌍둥이 게시판이 설치됐다. 수배자 명단 등이 주로 붙는 기존 게시판과 달리 이곳에는 지역 예술행사 안내 포스터 등이 공지된다. 한 장소에서 예술과 치안업무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동네 공방과 꽃집 등도 힘을 보탰다. 꽃집 스칸소 플라워에서는 공방에서 판매하고 있는 아트 상품을 한꺼번에 전시해 팔고 있다. 행사 기간 중 수공예 퍼포먼스도 볼만하다. 피혁, 섬유, 목공의 공동 제작으로 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람객 앞에서 보여준다. 퍼포먼스는 20일 오후 3시, 27일 오후 1시30분에 열린다.
전체 행사를 한꺼번에 보려면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편하다. 각각 21일, 27일 오후 2∼4시 운영한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cafe.naver.com/sbyspace’ 참조(02-6906-9291).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공터·폐가까지… 현대미술에 뒤덮인 성북동
입력 2017-05-21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