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이 염원하였던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는 제가 지금까지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큰 기둥이자 버팀목이 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19일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64·사법연수원 9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2012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때 인사청문회에서 군 검찰관으로서 지켜본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담담히 회고하며 한 말이다. 그는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주검의 검시를 담당했었다”며 “충격과 비장함 속에서 할 수 있던 일은 시신의 상태와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고 당시 말했다. 유신 시절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법관으로 임관, 법조계에서 대표적 진보 인사로 발돋움한 그는 “국민의 작은 목소리에 소홀함이 없이 귀 기울이고, 국민의 참된 의사와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성찰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실제 헌재 내에서도 그는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내는 재판관으로 유명했다. 대표적인 장면은 2014년 12월 헌재가 8대 1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할 때 홀로 반대의견을 낸 일이다. 당시 그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수라는 수적 우위와 보편적 정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주류적 사고로 인해 소수의 생각이 주눅들어 사멸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무수한 생각들 중에는 무의미하고 허황된 것이라는 초기의 일축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 보편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 것들이 적지 않다”며 시간이 흐른 뒤에는 통진당 해산 결정이 어리석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닐지 우려하기도 했다.
김 권한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도 과감한 보충의견을 내놨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일인 2014년 4월 16일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은 것 자체가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라는 비판이었다. 그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북 출신인 김 권한대행은 1974년 유신정권 치하에서 64일간 구금된 전력이 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관련됐던 그의 선배가 김 권한대행의 집에서 저녁을 한 끼 먹고 갔는데, 이후 학교에 있던 김 권한대행을 전남도경이 연행해 대공분실로 보냈다고 한다. 김 권한대행은 5·16군사정변(쿠데타)에 대해서는 “권력을 잡는 방법은 비정상적인 방법이었다”는 역사의식을 보였다.
김 권한대행은 법관의 길을 걸으며 정의로운 재판은 물론 법관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답을 구하려 애썼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논어에 나오는 ‘군자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아홉 가지’를 법관의 자세로 여겨 후배들에게 소개해 왔다. 아홉 가지 가운데서도 사물을 볼 때에는 밝고 정확하게 보려고 생각한다는 시사명(視思明), 일 처리를 경건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사경(事思敬)의 자세를 강조한다.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모습이 회자됐다.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면 정식으로 헌재소장에 임명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탄핵심판 ‘세월호’ 보충의견, 소신 뚜렷한 ‘진보’ 법관… 김이수 누구
입력 2017-05-19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