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작업이 속도를 올리고 있다. 연일 강수를 두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핵심간부의 ‘돈봉투 만찬’을 계기로 검찰 특유의 수직적 기수문화를 깨고, 검사동일체 관례마저 해체를 시도하는 등 검찰 폐부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검찰 개혁 속도전은 참여정부 시절 참담한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9일 “문 대통령이 준비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산은 노무현정부 국정운영의 실패 경험”이라며 “검찰 개혁은 문 대통령이 과거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돈봉투 만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지시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언론 보도 이틀 만인 17일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전격 감찰 지시를 내렸다. 18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수리하지 않았다. 19일엔 이들을 각각 부산고검 차장과 대구고검 차장으로 좌천 인사 조치했다. 검찰의 핵심보직인 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급에서 지검장급로 격하했다. 사흘 동안 숨 쉴 틈 없는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절차적으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검사의 임명·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이뤄지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창재 법무부 장관 대행의 사의 표명 전 협의 절차를 완료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인사 발표 전 이 대행과 사전 협의를 했다. 모든 법 절차를 준수했다”고 말했다.
비(非)법조인 출신 조 수석이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은 ‘밀리면 끝’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검찰 개혁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조 수석은 취임 일성으로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선거가 다가오면 개혁 동력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봉투 만찬’이 세상에 알려지자 전면전에 착수했다. 검찰의 관례였다 하더라도 ‘최순실 게이트’ 수사 미진 등 명분에서 밀릴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정부 당시 개혁 입법들이 번번이 좌초했던 경험도 속전속결 전면전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노무현정부는 2004년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지만 명분만 있었을 뿐 ‘빽바지(개혁파) 대 난닝구(실용파)’ 논쟁 등 당내 분란까지 생기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는 “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청와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개혁 과제들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 역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국회 차원의 해법은 별도로 가되, 청와대가 즉각 실시할 수 있는 개혁 조치들은 바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이날 파격 단행한 검찰 인사권이다.
문 대통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지검장급 격하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 격상 이후 검찰총장 후보군에 포함되면서 수사에서 정권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 5기 아래인 윤석열 지검장(23기)을 후임으로 임명, 검찰 기수 문화 파괴 및 검사동일체 관례를 무력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음주쯤 발표될 법무부 차관은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가 반영된 상징적인 발탁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권에서는 ‘제2의 윤석열’급 인사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헌재소장 후보자를 직접 발표한 뒤 예정에 없던 기자들의 질문을 즉석에서 받았다. 문 대통령은 발표를 마친 뒤 “혹시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은 뒤 3가지 질문에 답했다. 춘추관 경호도 약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발표 때는 취재진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도 흘러나왔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돈 봉투 만찬’ 비난 여론 업고… 靑, 연일 초강수
입력 2017-05-2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