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폐기 착수한 직후 물러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입력 2017-05-18 18:51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업무를 총괄했던 국사편찬위원회 김정배(77·사진) 위원장이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도록 지시하고 교육부가 즉각 폐기 절차에 착수한 직후다. 휴지가 된 국정 교과서와 함께 역사학계에서 존경 받던 고대사 권위자도 쓸쓸히 퇴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17일 교육부 운영지원과에 사람을 보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밝혔다”며 “사직서는 곧바로 청와대로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역사 관련 사료 수집과 편찬 연구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위원장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2015년 3월에 취임해 임기 3년을 10개월가량 남겨놓은 상태였다.

김 위원장은 고대사 권위자다. 고려대 사학과 교수 시절인 1971년 문명대·이융조 교수와 함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하기도 했다. 고려대 총장,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동북학원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국사편찬위장 취임과 함께 박근혜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 전면에 나섰다. “기존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좌편향돼 있어 국정 교과서로 회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의 제자들이 공개적으로 만류하는 등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사학계 원로 학자들은 2015년 10월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를 요구하며 “학자로서 양심과 소신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그에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정 교과서 집필진 구성이나 편찬기준 등을 비밀로 부쳐 밀실 집필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어떤 비판에도 꿈쩍 않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국정 교과서가 폐기되자 사퇴한 것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편향된 교과서 때문에 많은 걱정이 있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었다”며 국정 교과서 폐기 조치에 간접적으로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