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치유의 광주… ‘37년 恨’ 눈물로 씻다

입력 2017-05-18 18:13 수정 2017-05-18 21:21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 열린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민주화운동 유족 김소형씨를 안아주고 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사흘 후 계엄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었다. 김씨는 아버지 추모사를 읽다 울음을 터뜨렸고 문 대통령은 단상에서 그를 포옹하며 위로했다. 광주=이병주 기자

김소형(37·여)씨가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아버지(김재평씨, 당시 29세)를 추모하는 글을 목멘 소리로 읽었다. 소형씨의 아버지는 그해 5월 18일 소형씨가 광주 금남로에서 태어난 날, 딸을 보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가 나흘 만에 희생됐다.

추모사를 마친 소형씨가 돌아서서 퇴장하는 순간 파격이자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됐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던 문재인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단상에 올라 소형씨를 뒤따랐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따뜻하게 포옹했다. 탄흔으로 얼룩진, 끊임없이 배척의 대상이 됐던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앞으로 화합의 계기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18일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통합과 위로의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5·18 관련 단체장과 유가족 대표, 촛불집회 단체 등과 함께 기념식에 참석했다. 모든 희생자 묘역에는 대통령 명의의 국화가 놓였다. 경호 절차도 간소화됐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던 가수 전인권씨가 무대에서 ‘상록수’를 노래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함께 제창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보혁(保革) 갈등의 원인이 됐던 이 곡이 화합과 미래를 상징하는 곡으로 여겨지길 바라는 뜻에서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라며 “오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3분간 이어진 기념사에서 민주주의 쟁취,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한 성찰의 뜻을 내비쳤다.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고 모든 국민이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며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기렸다. 그러면서 “마침내 5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문재인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2014년 진도 팽목항에 ‘5·18 엄마’ 명의로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고 걸린 펼침막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라며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시민을 향해선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기억해 달라.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 통합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헬기사격을 비롯한 발포 명령자 등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드러냈다.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글=강준구 기자, 광주=김판 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