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감동이다. 강팀의 화려한 기술과 뛰어난 골 결정력은 축구팬들을 언제나 설레게 한다. 하지만 약팀이 투혼 끝에 강팀을 잡거나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 역시 많은 감동을 안긴다. 20일 개막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바누아투와 베트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두 팀은 사상 처음 FIFA 주관 대회 본선에 나섰다. 두 팀은 최약체라는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고 싶을 뿐이다.”
남태평양에 있는 인구 27만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는 FIFA 랭킹 179위의 약체이다.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에 티켓 2장이 배정되면서 이번 대회 출전 기회를 잡았다. 바누아투는 2016년 9월 OFC 대회를 개최해 놀라운 경기력을 펼쳐 보였다. 대회에 참가한 8개국 중 유일하게 조별 예선 3경기에서 모두 이겼다. 준결승전에서 솔로몬 제도를 상대로 1골 뒤진 가운데 놀라운 투혼으로 2대 1 역전승을 거두고 U-20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바누아투 전사들의 활약으로 나라 전체는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바누아투는 국내총생산(GDP)이 178위에 머물러 있지만 국민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이다. 낙천적인 바누아투 선수들은 도전 자체를 즐기고 있다. 지난 9일 일찌감치 입국해 대전에서 담금질에 한창인 바누아투 선수들은 원주민 의식을 치른 뒤 훈련에 들어간다. 훈련은 마치 놀이를 하듯 자유분방하게 이뤄진다.
지난 2월 바누아투 사령탑에 오른 데얀 글루슈체비치(세르비아)는 FIFA와의 인터뷰에서 “바누아투라는 나라와 오세아니아 축구 실력을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목표”라며 “무수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월드컵 진출을 이룬 건 대단한 일이었다. 사상 최초의 월드컵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선수들은 역사에 남을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B조에서 독일, 멕시코, 베네수엘라와 경쟁해야 하는 바누아투는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20일 멕시코와의 B조 첫 경기를 갖는 바누아투의 국민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자랑스런 전사들을 열렬히 응원할 계획이다.
베트남 국민들 역시 축구 열기에 들떠 있다. FIFA 랭킹 136위인 베트남은 지난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첫 경기에서 북한을 2대 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어 아랍에메리트연합, 이라크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8강에 안착했고, 8강전에서 주최국인 바레인마저 1대 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진출, 이번 대회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베트남 U-20 대표팀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꾸준히 키워 온 ‘황금세대’다. 베트남축구협회는 2000년대 후반부터 유망주들을 해외 명문 프로구단에 보내고, 전문 교육기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성인 대표팀을 비롯해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보내 실력을 키우도록 했다. 이번에 그 결실을 본 것이다.
호앙 안 투안 베트남 감독은 베트남 돌풍을 이끈 주인공이다. 그는 U-19 챔피언십 당시 상대팀을 철저히 분석한 뒤 맞춤형 전략을 선보였다. 또 팀 내 규율을 세우고 선수들에게 투혼을 불어넣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온두라스, 뉴질랜드와 함께 E조에 묶였다. 원 팀으로 뭉친 베트남이 다시 한 번 파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최약체’ 바누아투·베트남, 열정은 ‘최강팀’
입력 2017-05-18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