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은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강아지 한 마리를 하룻밤 임시보호하게 되었다. 진돗개 피가 섞인 듯도 한 누르스름한 녀석은 갓 돋아난 이빨이 근질근질한지 입에 닿는 것마다 잘근잘근 씹는다. 집에 오자마자 할아버지뻘인 고양이 맹랑이와 팽팽한 신경전을 잠시 벌인 뒤 꼬맹이는 강아지 본분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싸기, 오줌 묻은 발로 온 집안 헤집기, 무릎담요 질질 끌고 돌아다니기, 철퍼덕 밥그릇 뒤엎기, 신발 물어뜯기…. 배불리 먹이고 30분쯤 지치도록 놀아주면 녀석은 한순간 픽 쓰러져 잠이 든다. 작은방에 넣어놓고 한숨 돌리나 싶으면, 두 시간 후에는 여지없이 깨어나 숨이 넘어갈 듯 비명을 지르며 울어댄다. 부랴부랴 쫓아가 먹이고 닦고 놀아주고 하다 보면 다시 픽.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데, 옛날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줄줄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일기장에는 ‘아빠가 산에서 주워 오신’ 고양이에 대한 시가 있다. 5, 6학년 방학에 전방의 아버지와 지내러 가는 길에는 나비가 늘 함께 있었지. 밤기차와 시외버스와 지프차를 갈아타는 거의 24시간 여행 동안 녀석은 태평하게도 내 무릎에서 잠들어 있었다. ‘반려동물’은커녕 ‘애완동물’이라는 용어도 없고 동물병원도 없던 때였으니 그 강아지 고양이들과는 대개 슬프게 헤어졌다. 쥐약 먹은 쥐를 먹고 몸부림치던 해피, 설사 끝에 탈진해서 눈을 감은 담비. 가장 오래 같이 살았던 나비는 어떤 식당에 보냈던 것 같다. 나를 엄마로 여기던 바삐는 반년 넘게 계속되는 내 기침의 원인으로 지목돼 집에서 쫓겨났다. 코앞에서 문이 탁 닫히면 바삐는 애앵 울었었다. 그 애들을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마음 아린 시간 끝에 날이 밝았다.
꼬맹이는 다음날 입양처를 찾았다.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이 글 마무리에 ‘꼬맹이 데려다 키우실 분’을 목 놓아 외치려고 했는데. 녀석이 오늘밤부터는 비명을 지르며 울지 않고 내내 쌔근쌔근 잘 자면 좋겠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바삐야, 미안해
입력 2017-05-18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