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절차적 정당성 없는 ‘사드’ 국민적 공론화 우선 추진

입력 2017-05-18 05:02

문재인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재검토 과정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단 전임 박근혜정부가 절차적 정당성 없이 배치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한 만큼,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배치 결정 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나 국정조사가 열릴 수도 있다.

우선 지난해 2월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진 배경을 두고 의문점이 적지 않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박근혜정부는 그동안 사드 배치와 관련해 ‘3NO’(요청·협의·결정 없음)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배치 검토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참모들과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추측도 있다.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사드 배치의 명분도 부실했다. 박 전 대통령과 당시 국방부는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로는 국민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을 모두 방어하기 어렵다. 전임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진짜 이유를 숨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군 소식통은 17일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사드를 들여오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사드는 결국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 증원 병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미군 보호장비를 들여오면서 우리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니 설명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전임 정부의 실책이 추가로 드러난다면 사드 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 재검토를 한·미동맹에 입각해 진행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배치 철회 쪽으로 기운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일단 청와대는 배치든 철회든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내 절차로 사드 문제를 공론화해 비용 문제 등을 따져보겠다는 것”이라면서 “사드 배치 자체를 철회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국회에서 공론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도 이런 입장을 전달해야 설득할 지렛대가 생긴다”고도 했다. 국민적 여론을 근거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설득하겠다는 이른바 ‘전략적 지렛대’론이다.

미국이 이런 우리 측 요구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16일 서울에서 “사드 배치는 이미 합의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추가 협의는 있을 수 있어도 배치 결정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 사드를 한국 방어가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전략적 위협 차원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절차를 거쳐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메시지 정도로는 중국이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든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