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7017은 걷는 도시… 그래서 헌 신발 생각”

입력 2017-05-17 21:37
서울역고가도로를 공중보행로로 재생한 ‘서울로 7017’에서 17일 촬영한 ‘슈즈트리’ 모습.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이 거대한 설치예술작품은 서울로 7017 개막일인 20일부터 9일간 전시된다. 곽경근 선임기자
황지해 작가
요즘 서울역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게 있다. 서울역고가도로 위에서 서울역광장 앞으로 엄청난 양의 신발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물이다. “이게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쓰레기더미 같은 데?” 보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한다.

3만여 켤레의 헌 신발로 만든 높이 17m, 길이 100m, 최대 폭 10m의 설치예술작품 ‘슈즈트리(Shoes Tree)’다. 서울역고가를 공중보행로로 재생시킨 ‘서울로 7017’이 20일 문을 열면 개장 기념으로 28일까지 9일간 전시될 예정인데 이 작품이 미리 공개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냄새가 날 것 같은 지저분한 신발들로 거대한 흉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황지해(사진)씨는 “논란이 있는 게 당연하죠”라며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예술이 가능한가요?”라고 되물었다. 슈즈트리를 만든 황씨는 세계 최고의 정원·원예박람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한국인 최초로 2년 연속 수상한 정원디자이너다.

그는 슈즈트리를 개념미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예쁘게 보이는 조형물을 만든 게 아니라 작가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통 화장실을 모티브로 한 ‘해우소’로 세계무대에 데뷔했고, ‘DMZ 금지된 정원’ ‘위안부 정원’ 등 정원디자인에 개념적인 접근을 해왔다. 그렇다면 그가 이 작품에 담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는 늘 정크아트에 관심이 있습니다. 쓰레기나 헌 물건을 재활용한 작품을 좋아해요. 서울로 7017이 뭐예요? 걷는 도시를 한 번 만들어 보자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헌 신발들을 생각한 거죠. 서울로 7017은 철거해야 될 고가도로를 사람들이 걷는 스카이워크로 만든 거잖아요? 저도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는 신발들을 모아서 예술품으로 만든 거예요.”

신발들을 엮어서 만든 슈즈트리는 고가 위에서 땅으로 폭포수가 흘러내리며 굽이치는 듯한 모양이다. 신발들 사이사이 꽃과 식물을 심었고, 신발끈을 늘어뜨린 터널도 만들었다. 헌 신발들로 꾸민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낡은 신발들을 길게 펼쳐놓은 모습이 보기에 그리 좋을 리 없다. 서울시에서도 처음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꽃과 나무, 공원 등의 의미를 표현한 예쁜 작품을 기대했는데 걷기와 재생을 개념화한 헌 신발 무더기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황씨의 예술성과 명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황씨는 “헌 신발들이 냄새 나고 더럽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저 신발들이 하나하나 꽃송이처럼 보여요. 저 신발들은 다들 누군가가 오랫동안 신던 거잖아요. 헌 신발에는 누군가의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는 “작품이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20일 완성품이 공개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날 슈즈트리를 보러 온 한 영국 언론인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황씨는 서울로 7017에 대해 “철거해야 할 고가를 공원으로 만든 서울시의 결정은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영국에는 ‘우리가 지금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30년 후 3000개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라며 “도시에서 가장 결핍된 게 녹색이고 정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원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의 어느 정원이고 처음 만들었을 때 칭찬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다들 욕을 먹었죠. 시간이 흘러 꽃과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제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정원은 완성되는 거예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