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검찰 손보기’ 신호탄 되나… 당혹·긴장

입력 2017-05-17 18:09 수정 2017-05-18 05:00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17일 태극기와 검찰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농단 수사 책임자였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을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을 감찰하라고 지시하자 법무·검찰 지휘부는 공황 속에 빠졌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양쪽 수뇌부 2명마저 동시에 감찰 대상이 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이 부처의 특정 사안을 지목해 공개 감찰을 지시한 건 이례적이다. 새 정부가 이번 사건을 지렛대 삼아 검찰 제도 개혁과 인적쇄신의 고삐를 죄려 한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 종료 격려 만찬

이 지검장과 검찰 2년 후배인 안 국장은 지난달 21일 서초구의 한 음식점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을 함께했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장인 이 지검장은 수사팀 부장검사 이상 6명을, 안 국장은 법무부 과장 2명을 대동했다. 김치찌개와 계란탕이 나왔다고 한다. 총 10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은 서로의 후배 검사들에게 70만∼100만원씩 든 돈봉투를 교차 지급했다.

특수본 수사 종료 나흘 뒤의 일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에 실패하고 불구속 기소로 수사를 마무리한 데 따른 여론의 비판을 받을 때였다. 안 국장은 지난해 우 전 수석과 1000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특수본의 잠재적 수사 대상으로 분류됐었다.

만찬이 논란이 되자 검찰은 으레 있는 후배 격려 자리였으며, 당시 안 국장은 내사·조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문제될 게 없는데 문제를 삼으려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문 대통령 판단은 달랐다. 만찬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고 검찰 해명도 부적절하다고 봤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여부 확인까지 주문했다. 논란이 커지는데도 법무·검찰이 자체 감찰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진상규명을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국정농단 수사가 미진한 데는 검찰 구성원 간의 카르텔이 자리한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 비상·당혹·곤혹…

법무부와 대검찰청 지휘부는 비상이 걸렸다. 두 기관은 곧바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감찰 지시 발표 1시간30분 만에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 감찰본부가 협의해 신속히 계획을 수립한 뒤 법과 절차에 따라 진상을 파악하고 관련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감찰은 필연적 수순이 됐지만 걸음은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검찰 2인자인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 인사·행정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이 조사 대상인 데다 무슨 결과를 내놔도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기존 기구와는 별도로 특별감찰 조직이 꾸려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대통령 5호 업무지시 형태로 내려온 이례적 감찰 지시 배경과 속뜻에 더욱 긴장한다. 검찰을 향한 전면적 공세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격려금 출처로 알려진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까지 점검토록 한 건 검찰의 오랜 폐쇄적·관료적 조직 자체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 작업도 예고돼 있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대통령이 특정 부처 사안에 대해 공개 감찰 지시를 내린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나갈 사람은 내보내고 현 정부의 검찰 개혁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뜻 아니겠나”라고 했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만찬이 부적절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감찰 지시를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