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 전도사’가 칼을 쥐었다. 그는 13년 전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에서 바지가 찢어진 채 쫓겨났다. 4년 전에는 삼성 사장단 앞에서 재벌 개혁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재벌 개혁 선봉에 섰다.
청와대는 17일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위원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을 먼저 인선한 뒤 공정위원장을 발표하는 관례를 깨고 첫 장관급 인사로 공정위원장을 내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재벌 개혁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경제 개혁에 대한 새 정부 국정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중소기업 관계 정립 등 경제 개혁에 대한 방향을 정립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역임하는 등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의 대부 격이다. ‘재벌 저승사자’ ‘재벌 개혁 전도사’로 불려 왔다.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출신으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애제자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1994년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재벌 개혁운동에 뛰어들었다. 2004년 삼성전자 주총장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가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하게 하는 등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주장하다 강제 퇴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등 강성 이미지와 달리 합리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기간 중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 강경 일변도였던 문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바뀐 것도 김 후보자가 합류한 이후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 정책자문위원 등 10년 넘게 재벌 개혁 관련 사안을 토론하면서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시각은 달라도 말이 통하는 합리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 대선 후보의 정책자문교수단으로 참여한 이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 왔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특검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고, 지난 3월에는 문재인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김 후보자는 “우리나라 30대 재벌 자산 중 4대 재벌이 절반”이라며 “경제력 집중억제와 관련된 주된 정책의 대상은 4대 재벌로 좁혀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우리나라 상위 4대 그룹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김 후보자는 재벌 개혁 방식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경직적인 방식으로 하진 않을 것”이라며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현행법을 집행할 때는 상위 재벌에 집중해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소액주주나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시장의 압력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상법 개정이나 스튜어드십 코드 등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감독을 통한 방식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문동성 기자 zhibago@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투데이 포커스] 김상조, 눈치 안보는 ‘재벌개혁 전도사’
입력 2017-05-17 18:07 수정 2017-05-17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