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품은 아이들 ③] 치료비 때문에 집도 팔아… 기도로 희망 찾아

입력 2017-05-18 00:04
김민재(지적장애1급·뇌병변장애6급)군이 어머니 최정화(안산 온유한교회) 집사의 품에 안긴 채 기도하는 손동작을 취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지난 10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의 한 빌라 안방 텔레비전에선 ‘번개맨’이 악당들을 무찌르고 있었다. 번개맨을 제일 좋아하는 열두 살 김민재 군은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이리저리 팔을 휘저었다. 엄마 최정화(39) 온유한교회(김해곤 목사) 집사는 “전엔 10초도 가만히 있지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라며 “치료를 늘리면 발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김군은 지적장애(1급)와 뇌병변장애(6급)를 함께 앓고 있다. 최 집사는 “태중에 있을 때는 물론 생후 1년이 지날 때까지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걸음마가 미숙해 보여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려 했을 땐 “성장발달이 좀 느릴 수도 있지 멀쩡한 아이를 왜 장애인 취급하냐”는 주위의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민재는 두 돌이 지나서야 병원이 아닌 장애인복지관에서 첫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치료를 받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민재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난 뒤부터가 진짜 시작이더라고요. 모든 걸 다 걸어야 했습니다.”

언어 인지 감각통합 소근육 운동치료 등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치료가 이어졌다. 장애등급 판정을 받기 위해 수차례 심사를 받았지만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기까지 4년이 걸렸다. 정부 지원 없이 치료를 받다보니 경제적 부담은 날로 커졌다. 4년 동안 매달 많게는 300만원이 드는 치료비 때문에 결국 집도 팔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재가 일곱 살 되던 해 엄마와 아빠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민재를 특수학교에 등교시킨 뒤 하교할 때까지 식당일을 하고 민재를 재우고 나선 기계 부품 조립하는 재택근무를 새벽 2시까지 하면서 근근이 살았어요. 하지만 팔에 무리가 오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그만둬야 했죠.”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민재는 치료의 종류와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여덟 살 땐 약물 부작용까지 겪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교실이나 길거리에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민재의 몸엔 아물만하면 다시 찢어지고 긁혀 덧난 상처들이 가득했다.

“눈앞의 현실은 그야말로 막막하기만 했죠. 그때 하나님을 처음 만났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죠.”

최 집사는 민재와 같이 치료를 받던 장애인 가족들의 전도로 태어나 처음 교회에 가게 됐다. 그는 “셀모임에서 민재의 치료, 학교 입학, 이사 등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때마다 기적처럼 응답이 찾아왔다”며 “민재가 교회 갈 때마다 받는 관심과 사랑 덕분에 인지 능력도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민재네 가족에겐 기초생활수급비 약 10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민재는 밀알복지재단의 지원으로 운동치료(월 2회), 정부 지원으로 언어(월 2회)와 인지(월 1회)치료를 받고 있다. 감각통합과 수영 치료를 병행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란 의료진의 조언에도 비용부담이 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 집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민재를 바라본다.

“옹알이가 많이 늘었지만 아직 ‘엄마’란 얘길 들어보지 못했어요. 말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먹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를 몸짓으로만 표현할 수 있어도 기도의 응답이겠죠.”

안산=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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