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인간은 그 안에서 사랑하고 섬기도록 창조됐다”

입력 2017-05-18 00:00 수정 2017-05-18 10:20
새 한 마리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따라 스스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다. 픽사베이
성경에 대한 이해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가로 불리는 자크 엘륄(1912∼1994)의 성경 연구서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와 ‘부와 가난에 관하여’(이상 비아토르)는 평소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성경 지식에 균열을 낸다. 성경무오설을 맹목적으로 숭배한다면 그 수준은 지진에 가까울 수도 있다.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는 창세기 욥기 마태복음에 대한 강해이다. 먼저 창세기를 엘로힘 야훼 제사장 전승으로 나눈다. “창세기 1장 1절에 이스라엘 땅이 언급된다는 사실…하나님의 계시로,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시작되었는지 보여주고….”(57쪽) 창세기가 우주의 탄생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계시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하나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창 1:27)에 대해 “하나님은 하나 속의 여럿입니다. 인간은 두 형태로 분리된 한 인격체”라고 한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엘로힘의 뜻은 ‘Being of beings’(존재들의 존재)로 복수형 단수이기 때문이다. 이어 하나인 이 둘의 관계는 사랑이고 하나님이 맺는 유일한 관계라고 말한다.(77∼78쪽)

엘륄은 이렇게 사랑을 설명한다. 인간은 자유 속에서 하나님과 만물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창조됐다고 한다.



부와 가난에 관하여는 아모스와 야고보서에 대한 연구다. 전자가 인간의 본질적 자유, 사랑, 능력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엘륄은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숨겨져 있는 깊은 악, 곧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사랑이 없음을 드러낸다”고 한다. 또 세상 사람과 다르다고 믿는 기독교인의 자만심을 비판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었다고 믿지만, 실상은 아닙니다.”(368쪽)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엘륄은 기술 3부작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보르도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프랑스 개혁교회 전국위원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다. 두 책은 그의 사상적 계승자인 기술철학자 빌렘 반더버그(73)가 엘륄이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을 때 녹음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반더버그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책으로 정리하는 데 긴 시간을 쏟아야 했다. 반더버그는 서문에서 “내가 이 궁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도와준 자크 엘륄을 기억하는 사랑의 수고”라고 표현했다.

엘륄은 사상적 폭이 매우 커서 그의 저술은 난해하다. 그런데 반더버그가 이를 쉽게 정리했다. 비교적 쉽게 엘륄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훌륭한 엘륄 입문서인 셈이다. 반더버그의 서문은 책을 읽는 데 길잡이가 된다. 하지만 상식을 깨는 여러 본문이 있으니 다소 긴장하는 게 좋다.

또 수많은 히브리어 인용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엘륄은 성경을 정답을 제시하는 책으로 보지 않고 “질문의 책”이라 여겼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찾으라고 한다. 성경 탐구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해체된 성경이 자기 안의 질문과 만나 일사불란하게 엮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곁들여 읽을만한 책, 세계적 사상가 자크 엘륄 '기술 3부작'

자크 엘륄을 세계적 사상가 반열에 올린 책은 '기술 3부작'으로 불리는 기술체계(표지·대장간), 기술사회, 기술의 역사(한울)다. 그는 3권의 책에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기술이 신성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독교 분야의 대표작으로 뒤틀려진 기독교(표지·대장간)가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 외에 어떤 신성함도 용납하지 않는 종교이지만, 교회는 규범과 의식을 만들어 스스로를 우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계시를 실천하는 것, 즉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이라고 한다. 엘륄은 칼 마르크스의 사상,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적 여정을 걸어왔다. 60권 가까운 저서와 1000여 편의 글 중 30여권이 국내에 번역됐다.

강주화 장창일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