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같은 글이다. 두 세 단어로 한 문장이 끝나고 서너 문장으로 한 단락이 마무리 된다. 책 어디를 펼쳐도 후루룩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빨리 읽다가 돌아오길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런 뒤에야 ‘사랑이 위독하다’(표지·토기장이)는 천천히 읽도록 고안된 책이란 걸 깨달았다. 지은이 김겸섭(58·한마음교회) 목사를 최근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해사한 시인의 얼굴 같았다. “겨울 나무 같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뼈만 남은 글. 시인을 따라한 거죠. 허허. 전 시인들이 천국에서 휴가 나온 천사들 같아요. 천국에는 말이 많이 없을 테니까.” 책은 삶의 지혜를 담은 에세이 10개가 담겼다. 매일 새벽 4시쯤 일어나 하나씩 썼다고 한다.
단문 형식은 메시지를 함축한다. “소음이 진실한 말의 의미를 가로채고 화려한 수식어가 글의 뜻을 흩트려요. 이런 말과 글은 아마 우리의 ‘비만하고 과잉된’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거겠죠. 그걸 피하고 싶었어요.” 김 목사가 지향하는 삶과도 닮았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삶에도 생략이 필요하다”며 “분노 절망 탐욕을 덜어내 삶을 가볍게 해야 한다”고 썼다.
천천히 한 편씩 읽다보면 우리 삶에 얹힌 욕망 미움 좌절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랑이 파열되는 첫 번째 원인은 자신만을 위한 사랑을 해서입니다. 이기심에서 출발한 사랑은 욕망일 뿐입니다. 자기 행복, 지위 상승, 상처 치유…. 이런 것을 위한 사랑은 언젠가 금속성 파열음을 내며 부서질 것입니다.”
김 목사는 그 사례로 희귀병을 앓는 누나 몰리의 골수이식을 위해 계획적으로 태어난 동생 애덤을 든다. “애덤이 어느 날 ‘엄마 나는 왜 태어난 거야’라고 했을 때 부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애덤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사랑은 예수의 십자가처럼 무조건으로 주어질 때 참된 의미를 갖는다고 김 목사는 강조했다.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부관계를 예로 들죠. 상대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해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도 해야 하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기대와 사랑으로 끊임없이 상처받는다. 그래서 묻게 된다. “그래도 사랑해야 할까요.” 그는 답했다. “어느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사랑은 사람의 일이라고. 깨진 사랑은 다시 사랑하는 것으로만 회생합니다.” 상처받은 사랑에 대해 그가 제안하는 치유법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사명이기도 하다.
책은 김 목사의 방대한 독서력을 반영한다. 플라톤의 우화 ‘기게스의 반지’ 김수영의 시 ‘풀’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동서양의 다양한 예술작품이 책에 인용된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유서 깊은 서가에 앉아 지혜서 낭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 천천히 조금씩 읽어야 한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저자와의 만남-‘사랑이 위독하다’ 펴낸 김겸섭 목사] 삶에도 생략이 필요하다
입력 2017-05-18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