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 2014년 검찰의 정윤회 문건 사건 조사 당시 문건 유출자로 지목됐던 한일(47) 전 경위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들었다는 메시지 내용이다. 수사 도중 불거진 이 ‘청와대 회유 논란’은 한 전 경위가 스스로 법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히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한 전 경위의 변호인이 회유를 듣지 못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뿌리로 정윤회 문건 사건이 다시 언급되고 경찰이 사실상 재조사에 나서며 이 문제 역시 부각되고 있다. 회유의 진상을 적극적으로 규명하지 않았던 검찰을 겨냥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재직 당시였다며 교감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검찰은 민정수석실의 회유 여부가 당시 수사범위 바깥이었으며, 회유가 실제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수사 상황상 회유가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한다.
16일 검찰 등에 따르면 정윤회 문건 사건을 조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014년 12월 8일 오후 2시55분 서울중앙지법에 한 전 경위를 체포하기 위해 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한 전 경위가 언론에 밝힌 민정수석실의 회유 시점보다 앞선 시각이다. 한 전 경위는 같은 날 오후 3∼4시쯤 공중전화(번호)로 전화를 받았고, 오후 5시쯤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소속 경찰 파견직원을 만나 “자백하면 불기소로 편의를 봐줄 수 있다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한 전 경위는 민정수석실의 제의를 거절하자 검찰이 자신을 영장 없이 긴급체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상 검찰은 그 이전부터 청구해 둔 체포영장으로 한 전 경위를 체포한 것이다. 검찰은 앞서 한 전 경위의 자택에서 USB를 압수했고 그 안에서 문건 유출 경로가 특정된 대화내용을 발견해 자백을 받았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회유의 대가인 불기소가 애초 불가능했고, 청와대와 교감할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검찰은 2014년 12월 10일 한 전 경위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회유에 따른 자백이었다면 청구될 수 없었던 구속영장이라고 검찰은 강조한다. 회유 이야기는 그 다음 날인 2014년 12월 11일, 한 전 경위와 함께 입건된 고 최경락 경위 등의 구속전 피의자심문 과정에서 처음 나왔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한 전 경위를 상대로 “회유를 받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 전 경위는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한 전 경위의 구속영장 기각 후에는 그의 건강 문제로 소환조사를 하지 못했다. 대신 한 전 경위의 변호인이 회유 사실을 듣지 못했다는 의견서를 냈고, 검찰은 별도 수사의 단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 전 경위는 방실침입·수색,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2심까지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2심은 한 전 경위에 대해 “각 문건을 발견해 복사한 경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 한일 前 경위 靑 회유시점 앞서 檢 이미 체포영장 청구
입력 2017-05-17 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