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지리산 진분홍 유혹 따라가는 봄꽃의 마지막 향연

입력 2017-05-17 20:43
전북 남원의 지리산 서북능선 팔랑치에서 한 사진작가가 연분홍 철쭉으로 산상 화원을 이룬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춘향전의 주무대’ 광한루원의 오작교 위를 여행객이 거닐고 있다. 호수로 몸을 기울인 버드나무 고목의 초록빛이 환상적이다.
‘만인의 의로운 무덤’이라 불리는 만인의총.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 명 호국의 얼이 서려 있다.
지리산 정령치 아래 선유폭포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다. 우리나라 다른 산에서 찾아보기 힘든 큰 스케일로 전남·북, 경남 등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을 품고 있다. 그 너른 품 안에 남원시도 들어앉아 있다. 남원의 봄철 지리산 볼거리는 바래봉에 있다. 그렇다고 남원을 대표하는 광한루원도 빼놓을 수 없다. 만인의총 등 볼거리 가득한 남원으로 ‘봄꽃 엔딩’ 여행을 나섰다.

화려한 산상 정원, 지리산 서북능선

지리산 서북능선은 남원시와 구례군에 걸쳐 있는 운봉∼바래봉∼팔랑치∼부운치∼세걸산∼정령치∼만복대∼고리봉∼성삼재∼노고단 구간을 일컫는다. 총 18.4㎞로 하루에 주파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래서 5월 군락을 이룬 ‘봄꽃 향연의 마지막 주자’인 산철쭉이 아름다운 팔랑치∼바래봉 구간을 찾았다.

바래봉을 찾을 때 대부분 지리산허브밸리가 있는 용산마을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곳은 박석 깔린 길에다 오르막이 이어져 지루한 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번잡하기까지 하다. 좀 더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찾아 산덕마을 임도를 따라 부운치와 팔랑치 갈림길을 거쳐 바래봉으로 갔다.

산덕마을회관에서 뒷길로 들어서면 차 한 대 지나다닐 정도의 길이 임도까지 이어진다. 임도를 조금 들어서면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부터 걸어서 오른다. 1시간 정도 오르면 산덕임도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600m가량 오르면 부운치와 팔랑치 사이 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팔랑치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본격적으로 철쭉군락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분홍 꽃들이 만들어놓은 긴 철쭉 터널을 천천히 걷는다. 주변에 넓은 초지도 펼쳐져 있다.

팔랑치 정상에서 아래쪽을 보니 절정에 이른 철쭉들로 팔랑치 일대가 꽃불이라도 난 듯하다. 지대가 높고 사계가 뚜렷해 다른 철쭉 명산에 견줘 꽃색이 붉고 진해, ‘정열의 무희’처럼 강렬해 보인다. 성춘향과 이몽룡도 저렇게 붉은 정염을 불태웠을까. 그 너머로 구례와 하동쪽 첩첩 산들이 옅은 안개를 머금고 수묵화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팔랑치에서 바래봉 가는 1.5㎞ 구간은 서북능선이 품고 있는 비경 중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만큼 자연풍경이 빼어나다. 넓고 편안한 길을 따라 ‘산상 정원’이 펼쳐져 있다. 산자락 한 구비 돌 때마다 진홍빛 철쭉꽃의 아우성이 이어진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바래봉이고 왼편으로 직진해서 가면 용산마을이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으로 향하면 또 다시 철쭉군락지가 전개된다. 산 전체가 하나의 분재 정원처럼 인위적으로 가꾼 듯 정연하다. 조금 더 내려서니 바래봉 능선길이 나온다. 이곳에 명물이 있다. 특이하게 생긴 소나무이다. 바래봉 소개가 나올 때 가끔 등장하는 그 나무다. 지는 시기의 꽃이지만 여기저기에 피어난 예쁜 꽃들을 보며 마지막 능선을 타고 올라 바래봉 정상에 도착했다.

지리산 산마루금의 일부인 바래봉은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데기를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얻은 이름이다. 높이는 해발 1165m. 정상 데크 전망대에 서면 멀리 동쪽의 천왕봉부터 서쪽의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장쾌하게 펼쳐지고 굽이치는 암봉이 공룡의 등뼈를 연상케 한다. 겹겹이 층을 이룬 산들이 신록을 맘껏 뽐내고 있다. 그 사이에 깔린 운무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가까이로는 세걸산과 팔랑치 쪽이 한눈에 담긴다. 능선 인근에서 붉게 피어 있는 철쭉꽃 군락지가 신록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발치 아래 오른쪽으로 운봉읍의 너른 들녘이 아스라하다.

남원의 또 다른 철쭉 명산은 아영면 봉화산(920m)이다. 남원시와 장수군, 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솟아 예전에는 봉수대 구실을 했던 곳이다. 산 아래로는 흥부마을과 백제 요충지 아막산성이 있어 당일 여정지로도 손색이 없다.

‘춘향전의 주무대’ 광한루원

‘춘향전의 땅’ 남원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광한루원을 찾지 않고 남원을 말할 수 없다.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갈 만큼 만듦새가 뛰어난 광한루는 옥황상제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재현했다.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돌다리다.

저수지에 오작교 외에 방장정, 영주각 등이 삼신산을 이룬다. 물가로는 버드나무 고목이 줄지어 수면 위로 몸을 기울인다. 물에 어린 초록빛이 환상적이다. 영주각에서 방장정 남쪽을 바라볼 때 가장 화려하다. 깊고 짙은 숲그늘과 고풍스러운 전각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남문으로 가는 길에 푸른 잔디와 완월정이 반긴다. 완월정은 팔작지붕을 얹은 2층 누각으로, 옛 남원의 남문인 완월루의 이름을 땄다. 춘향관, 월매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네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요천을 가로질러 걸어서 오갈 만한 거리에 ‘춘향테마파크’가 자리한다. 만남, 맹약, 사랑과 이별, 시련, 축제 등 춘향의 일대기로 꾸며져 ‘춘향전’의 흥취에 더욱 깊이 젖어들 수 있다. 동헌과 옥사를 재현한 시련의 장에서 장난스럽게 곤장을 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사랑과 이별의 장에는 계단 끝에 단심정이 있다. 춘향테마파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 남원 시내 전경을 조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호국의 얼이 서린 만인의총

광한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만인의 의로운 무덤’이라 불리는 만인의총(萬人義塚·사적 제272호)이 있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명의 호국의 얼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임진왜란에서 물러났던 왜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 것이 호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1597년 11만명을 좌군과 우군으로 나눠 우군은 경남 거창의 황석산성으로, 좌군 등 5만6000명이 남원으로 진격했다. 이에 맞서 이틀 동안 민·관·군이 합심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남원성은 함락됐고 백성과 의병, 관군 1만 명이 전멸했다. 접반사 정기원, 병사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로, 별장 신호, 부사 임현, 통판 이덕희, 구례현감 이원춘 등이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은 한 곳에 묻혔다. 당초 남원역 부근인 동충동에 있었으나, 주변이 민가로 둘러싸이게 되자 196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71년부터 정화작업을 시작해 79년에 완공했다.

81년 사적으로 지정된 뒤 남원시를 거쳐 전북도가 관리해오던 만인의총이 지난해부터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다. ‘호국의 달’ 6월을 앞두고 들러볼 만하다.


■ 여행메모

추어탕·흑돼지·순대국밥… 옛 풍미 간직한 먹거리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 완주분기점→순천완주고속도로 남원분기점→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나들목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오수나들목에서 빠져 17번 국도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철쭉 산행의 경우 지리산허브밸리에 차를 두고 원점 회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원의 먹거리로 추어탕을 꼽을 수 있다. 국산 미꾸리를 곱게 갈아 운봉 고랭지 시래기에 들깨를 듬뿍 넣고 끓인 탕맛이 일품이다. 광한루원 인근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남원추어탕(사진·063-635-7200)과 새집추어탕 등이 유명하다.

남원의 별미로 추어탕만 있는 게 아니다. 지리산 흑돼지도 이에 못지않다. 고랭지 선선한 기후에서 키워낸 토종돼지의 육질은 고소하면서도 탄력 있는 옛 풍미를 간직하고 있다. 구이, 뼈다귀탕, 옛날식 순대로 끓인 순대국밥도 맛있다.

지난달 22일 개막한 ‘제23회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가 오는 21일 막을 내린다. 황산대첩비, 가왕 송흥록·국창 박초월 생가, 혼불문학관 등을 찾아봐도 좋다.


남원=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